실체,영성,현대인

제12장 - 해결책

목운 2017. 3. 21. 09:14

해결책

신의 존재와 본성에 관한 가설은 수세기에 걸쳐 서양의 위대한 인물들의 대화와 토론 주제였다. 그 대화는 치열한 노력과 헌신으로 얻어진 집단 지혜와 더불어 뛰어난 지적 통찰은 물론 막대한 지식을 보여준다. 모든 시대 위대한 사상가의 성실성은 분명하고도 고무적이다.


현대인은, 서양 문명의 이러한 인상깊은 노력은 물론 중동과 극동에서 축적된 지혜도 이용할 수 있다. 현대 중국에서는 유교가 거대하고 급속히 진화하는 사회에 대하여 유익한 기반으로서 도움이 되고 있다. 또 다른 거대 신생국인 인도는 수세기 동안의 집단 지혜의 정수를 반영하는 뿌리 깊은 힌두 문화(종교)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초기 거주자들의 원시 문화가 보편적으로 '위대한 영'을 발견하였고 서로 분리된 상태지만 광범위한 분포를 보이며 아프리카와 남미의 원주민 문화는 신성을 숭배했다.


기독교 이전의 그리스와 로마 및 고대 게르만족에게도 모두 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표현은 다르지만 인류는 신성이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을 집단적으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는 인간 역사 전체에 걸쳐 모든 인류에 대해 논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바의 모호한 지적 과업을 마주하는 셈이다. 그 과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지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아무도 그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는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바로 반증이 되는 게 아니라는 불가피한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신중한 사람이라면 신적 실체가, 의식 진화에 의해서 그 해답이 더 명료지는 가설적 확률의 문제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궁극의 해답은, 지적 영역이 의식 수준 400대에 제한되어 있기에 지식이라는 한정된 영역이 아니라 더 높고 더 큰 차원에서 얻어진다. 스스로에게 정직하면 태생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맹목적인 자부심이 400대 마음 작용에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생각하는 이'는 자기 마음이 다른 누구보다 진짜 더 낫다고 은밀히 믿고 있다. 이것은 '자신에 대해 좋게 느껴라'는,타임 잡지 표지(2006.12.25.)풍의 멋진 '당신' 세대의 심리적 기반이기도 하다.


마음이 실체에 관해 실제로 알 수 있다고 하는 환상은 그저 평범한 자부심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진화적 발전 결과인, 마음 자체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데서 나온 것이다. 생명체는 확실성을 확보해야 하며 유기체는(예를 들면 '체험자' 기능을 통해서) 환경을 검사해야 한다. 그리하여 생존을 위해서 선형 영역을 검사하는 일의 정확도를 위해서 신앙이 진화했다. 그러나 에고의 선형적 처리기능이 존재나 실체의 비선형 차원에서 실체를 찾아낼 능력을 습득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겁의 진화적 시간이 지나서야 인간 의식은 내용과 맥락을 분별하기 위하여 진화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인구의 85%는 아직 그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로 인한 한계는 대다수 인류가 맥락이자 존재의 근원인 궁극의 비선형 실체를 설명해 줄 매우 진화한 사람에게 의존해야 함을 뜻한다. 그리하여 의식 측정의 가치는 그것이 없었다면 이용할 수 없었을 고급 지식(본질의 분별)에의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망원경이 없었다면 볼 수 없고 찾을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 것과 똑같이 의식 연구는 평범한 지각을 초월한 진리를 밝히고 말로 할 수 없는 것과 아직 발견되지 않은 혜택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근원적 한계 벗어나기

영적 수행과 헌신의 기본 목적은 에고가 가진 진화상 근원적 한계를 초월하고 그로써 의식 자체의 발생기 능력에 접속하고 개발하는 데 있는데 의식은 에고(소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다. 진리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 저절로 드러난다. 신성은 신의 시간에 신성을 청하는 자에게 저절로 드러난다(진실로 측정됨). 영적 진화의 속도는 느린 듯 여겨질 수 있지만 영적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 진보는 그 차원과 영향에 있어서 아주 갑작스럽고 아주 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