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제가 글쓰는 이유

목운 2018. 9. 14. 07:52

결국 삶의 선택은 둘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는 깨달음이 젊었을 때보다 확연해집니다. 하나는 세상을 원만히 살면서 '잘 나가는' 삶이고 또 하나는 세상과 삶을 완전히 이해하고 '세상에 있지만 그저 세상을 가운처럼 걸친 듯' 사는 삶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성공한 삶과 깨달은 삶입니다.

제가 스승으로 보는 이들은 후자의 삶을 사신 분들입니다. 일찍부터 그런 삶을 선택하는 상근기 사람이 희귀한 것도 사실입니다. 보통은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자 애쓰다가 아예 후자에 관심 없이 세상에 몰입하거나 좌절과 고통을 만나 회두하여 깨달음에 관심을 가진다고 봅니다.

스승들은 종교를 만들어 깨달음 대행업을 벌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진실로 깨달음을 구하는 삶을 살면 의식주와 상식적인 소망 정도는 덤으로 다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건성 듣거나 종교를 포함한 자영업자들에 속아서 또는 스스로 욕심에 눈이 어두워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그래도 제 경우는 5년 전 겪은 좌절과 극심한 불안이, 완전히 회두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에 그때 일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편 돈과 권력이 있어 닥친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회두할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오히려 불행한 것인지 모릅니다. 제 글쓰기는 꿀벌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꽃에게 도움이 되듯이 외부 경제가 되었으면 하는 데 뜻을 두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의 극복과 성리학  (0) 2018.09.29
조하르와 보살 사상  (0) 2018.09.16
유교와 현대 영성 비교  (1) 2018.09.06
종교의 자연사  (0) 2018.08.23
격물치지와 회광반조  (0) 201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