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장자의 핵심 사상과 선불교

목운 2018. 11. 7. 21:04

우선 인용합니다. “선(禪)이라는 형태로 노장(老莊) 특유의 통찰을 그대로 되살리고 발전시키게 된 원인은 대승 불교의 충격 때문이었다. 토마스 머튼이 예리한 통찰력으로 관찰한 바와 같이 ‘장자의 사상과 정신을 진정으로 이어받은 사람들은 당나라 때의 중국 선사들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선사들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노장과 일치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선의 황금시대, 16~17쪽)”

우징숑(吳經熊) 님은 특히 장자의 핵심 사상이기도 한 ‘마음을 삼감(心齋)’, 완전히 잊음(坐忘)‘, ’꿰뚫어 봄(朝徹)‘이 선의 핵심 사상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는 장자 인간세와 대종사에 나오는데 그 번역은 중국 사람 간에도 많은 설이 있고 우리말로 그저 부드럽게 된 것들이 모두 핵심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보아 우징숑 님의 번역 가운데 몇 구절을 옮기고 제가 토를 다는 식으로 정리해봅니다.

장자가, 유교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와 그 수제자이자 성인의 문턱까지 간 안연을 등장인물로 핵심 사상을 설한 것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쨌든 공자님은, 모든 영성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바인 타인 구제에 앞서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먼저 “불안과 걱정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리는 만무하다네. 도를 아는 선현들은 먼저 자신을 돌본 뒤에야 다른 사람을 살필 여력을 지녔다네(憂而不救 古之至人 先存諸己 而後存諸人).”라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는 마음을 삼가는 일(心齋)의 요점을 “영혼은 비어 있으면서도 모든 것에 반응한다. 도는 이 빈 곳에 거처하니 비우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삼가는 일이니라(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齋也).”고 하시며 “빈 방만이 빛을 부를 수 있으며 더없이 즐거운 것들을 죄다 불러들일 수 있다네. 그리하여 가만히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천리마처럼 달릴 수 있는 것이네(虛室生白 吉祥止止 是之謂坐馳).”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려는 안회의 뜻이 인간적 방법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십니다. “사람의 뜻을 전하는 사람은 인간의 책략과 속임수에 쉽사리 의지하지만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은 그런 인위적인 수단을 구하지 않는다네(爲人使 易以僞 爲天使 難以僞).”

다음에 완전히 잊는 일(坐忘)은 마음을 삼가는 일의 보완이기도 한데 요컨대 “몸뚱어리와 사지를 버렸으며 지각을 내던졌습니다. 육체와 지식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저는 무한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일러 완전히 잊었다고 합니다(墮枝體 黜聰明 離形去知 同於大通 此謂坐忘).” 자신의 일체를 망각한다는 것인데 저는 마태복음 16장 24절, 즉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일부 번역은  ‘forget self’입니다)”라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공자님은 이렇게 완전히 잊은 후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안회가 당신을 앞서가는 지경임을 인정하십니다. “무한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호오가 그쳤다는 뜻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매이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자네가 내 앞에 가게 되었네. 나는 그대의 발자국을 따르리라(同則無好也 化則無常也 而果其賢乎 丘也 請從而後也).” 

마지막으로 꿰뚫어 본다(朝徹)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을 때만이 꿰뚫어 볼 수 있다(已外生矣而後 能朝徹).”고 하여 그때에는 하나만을 보게 되고 시간은 물론 삶과 죽음까지 초월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상태는, 완전히 잊음으로써 좋고 싫음을 벗어남은 물론 이원성의 세계를 벗어나 절대성의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걸리는 것이 전혀 없이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된다(攖寧)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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