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공부의 결말

목운 2018. 5. 31. 05:55

가끔 집안의 손자뻘 되는 아이들을 관찰하면 이름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은 광경을 봅니다. 이름이 곧 '나다' 하는 것은 온전히 훈련과 세뇌의 결과인 듯합니다. 여기에서 유추컨대 우리가 가진 사고틀은 모두 세상에서 입력된 것입니다. 그 모든 입력을 분류하고 선택함으로써 소위 정체성이라는 것을 만들고 거기에서 자신의 삶과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삶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이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심생멸의 세계, 즉 시공 안에서의 삶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과 끝없는 의식의 상승은 심진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나다' 하는 것이 입력되기 전의 말이 끊어진 세계입니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생명은 기쁜 것이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상태를 유지 향상시키려는 것이 바로 공자님이 학습(學而時習)이라 하셨을 때의 목표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공부의 완성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 경지(從心所欲不踰矩)라 하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학이시습의 '시'를 '때때로'라고 번역하지만 우징숑 님은 '언제나'로 번역합니다. 작은 듯하지만 작지 않은 차이입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 해설(소와 별기란 해설로 보면 됩니다.)을 반쯤 읽었는데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행히 김하풍 님의 해설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됩니다. 김하풍 님에 따르면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모든 근본 개념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말하자면 대승불교의 철학적 근거와 테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신을 보는 길, 부처를 보는 길 - 종교를 넘어서', 172쪽).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간단합니다. 즉 무명이 걷힐 때 마음은 다시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 돌아감이 곧 깨달음(覺)이다. 심생멸의 세계에 살면서 어떻게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는가? 이것이 기신론의 근본 주제입니다(위 책, 174~175쪽).

제 남은 삶의 모든 공부는 여기에 집중한 것이며 이 공부의 결말은 '그리스도의 편지'가 가르치는 대로 "세상 전부와 더불어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면서 지극히 축복스럽고 환희에 찬 상태가 될 것이며 결국 그런 사람들은 빛 속으로 들어가며 이승을 되돌아보지 않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만족스럽고 완전히 평화스러운 존재의 차원으로 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해탈을 하면 윤회를 하지 않는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기에 놀랄 따름입니다. 비유컨대 대학 과정 또는 고교 과정을 완전히 마친 사람이 초등학교 과정을 다시 하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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