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144

반성의식의 소멸

정은해 님의 유교명상론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은 반성의식의 소멸이다. 덕을 행하는데 그냥 느닷없이 나오는 게 아니면 실상 덕의 실천이라는 게 강압이거나 위선, 그것도 아니면 그저 강학용이 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인을 실천하는 데 밥 먹는 동안이나 엎어지고 자빠질 순간에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논어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거기에 이르는 데는 그저 오래 연습해서 몸에 밴 경지가 아니면 안 될 것이라는 걸 훈화 말씀에서 발견한다. 즉 "글쓰기를 완전히 익히고 난 후에는 글자 모습을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머뭇거리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쓴다." "그가 악기 연주를 할 때 계속 의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주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연주중 무슨..

생각끊기, 명상의 목적

명상의 주목적 가운데 하나는 생각끊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끊으면 어떻게 되는지, 또는 왜 생각을 끊는지 명료히 말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말씀을 만났기에 소개합니다. 에카르트 톨레 님입니다. "자유는 당신이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생각하는 자를 바라보기 시작하자마자 높은 의식 수준이 작동한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광대한 지성의 영역이 있으며 생각이란 그 지성의 극히 일부분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진짜 중요한 모든 것(아름다움, 사랑, 창조, 기쁨, 내적 평화 등)은 마음 너머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당신은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 태어나기, 에고 소멸

어제 길게 썼지만 실천은 단순합니다. 그 실천을 바로 할 수만 있다면 많이 읽을 필요는 없지 싶습니다. 읽는 것은 그저 단순한 행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목표를 확고히 하고 한마음(一念)으로 닦을 결심이 첫째입니다. 목표를 수시로 적어보면 그것도 진화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적은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외적 재앙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둘째 죽음을 기꺼워 할 것, 셋째 사랑과 평화로써 이승을 건너갈 것 등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어제 얘기한 에고 죽음입니다. 이는 이고 선생의 복성서의 지향점이면서 '자기를 버리라'는 그리스도 말씀이기도 합니다. 방편으론 불교의 육바라밀이 요점을 잘 지시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으로 써보면 사고틀과 감정패턴 지우기, 의지..

무위에 대하여

오늘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다가 도덕경의 무위에 대한 감을 잡은 듯해서 써봅니다. 저는 유불선과 힌두교, 심지어 기독교 신비주의가 한 목소리라고 느낍니다. 우선 소위 에고와 참나로 말하는 우리 존재에 대한 설명을 대승기신론의 심생멸과 심진여로 이해하면 쉽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즉 무위란 에고, 즉 심생멸이 완전히 극복되어 심진여로 사언행위를 하는 경지라고 보는 겁니다. 논어에서는 밥먹는 시간이나 엎어지고 자빠지는 순간에도 인(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이미 에고가 사라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얘기 같습니다. 에고를 없애려면 소아의 의지나 지성에 의존하는 바가 없어질 때까지 일념으로 닦아나가야 하는데 이 과정이 지난하기 때문에 좋은 스승을 만나면 좋고 아니면 날 때의 근기가 있는 사람은 가장..

명상 시작하기

오늘날과 같은 삶의 양식에서 명상의 시작은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세 같은 건 잊어버리고 무조건 10분동안 편안히 앉아 있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등받이를 하고 가장 편안하게 몸을 늘어뜨리고 잠에 떨어져도 좋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눈은 감되 시선을 위로 합니다. 명상은 존재상태를 변혁하고 상승시키는 일이라고 봅니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운명이 바뀌길 비는 어리석음을 질타한 적 있습니다. 천재와 성인을 만든 높은 의식으로 살려면 먼저 세상에서 습득한 생각과 감정을 지워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만) 자타 구분 없고 비판심과 우월감 없는 아이 상태로 돌아가면 비로소 지금보다 나은 생각으로 살게 됩니다. 보다 나은 생각이라 하면 고정된 프로그램 같은..

자기를 부인하는 일

인문학의 성공이란 전쟁 기타의 통치 목적에 부역한 경우로 대개 종교가 그 일을 합니다. 최근 그런 사례로는 중국의 새 이념에 기여한 이종티엔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 건질 게 있으니 저는 그가 주창한 고전의 "추상적 계승" 노선은 충분히 따를 만하다고 봅니다. 그에 따라 동서고금을 대표할 만한 세 분의 텍스트를 공부하고 오늘까지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블로그가 그분들을 충분히 다루고 있습니다만 다시 요약해 볼까 합니다. 세 텍스트는 이고 선생(773-841)의 복성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260-1328)의 훈화, 호킨스 박사(1927-2012)의 놓아버리기인데 복성서의 경우는 김용남 님의 연구를 제외하면 유례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봅니다. 이하는 제 글의 요지인데 거론..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제가 번역해서 가지고 있는 원고인데 목차와 머리말을 소개합니다. 혹시 필요하신 분은 메일 주소 남겨주시면 보내드립니다. [목차] 머리말 1부 : 그리스도교 신비 1장 : 평범한 눈에는 숨겨짐 2장 : 신비주의의 정의 3장 : 신비주의는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되는가 4장 :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의 진화 5장 :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비그리스도교 신비주의 6장 : 신비주의가 왜 중요한가 7장 : 신비적 역설 8장 : 그리스도교의 잘 숨겨진 비밀 2부 : 관조적 삶 9장 : 비움과 상호침투 10장: 성성(聖性)의 길 11장: 여정이 아닌 여정 12장: 신적 독서(Lectio Divina) 13장: 천상의 대화 14장: 언어를 뛰어넘는 기도 15장: 나무, 물, 포도주 16장: 신비주의의 정수 [머리말] 그리스도교..

미발함양과 이발찰식

지금 읽는 책(호킨스 '놓아버리기')에서 인상 깊은 게 있어 공유합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반려동물, 특히 개나 고양이를 영물이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즉시 알아차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영물이겠죠! 생각과 감정은 파동이고 에너지이기 때문에 저절로 퍼져나가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훈련된 높은 수준의 사람에게 가능하겠죠. 하지만 몸을 벗고 의식만으로 존재하는 사후 차원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몸을 가진 때에도 가족간 이웃간에서 우리는 말로 안 해도 서로 감정을 즉각 알아차립니다. 또 감정은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보다 중요한 결론은, 우리는 세상에 내보내는 생각과 ..

신비주의 실천의 두 기둥

[신비주의 실천의 두 기둥] 질문과 동시에 답이 얻어진 경우라서 씁니다. 세상을 구한다고 나서다 병에 걸리는 딱한 경우가 있습니다. 수행의 전통에선 세상을 구한다거나 정의 실현을 위해 나서지 말라고 합니다. 어제 거론한 호킨스 박사는 자신의 의식을 높이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지름길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예 속세와 인연을 끊고 느닷 없이 산 속이나 사막으로 가는 것은 지양하자는 지혜를 실천한 것이 조선 500년이었습니다. 한편 이 쪽의 극단은 세상사에 몰입해서 혈연의 우상화와 토지의 과독점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는 너는 답이 있냐 하면 저는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마태 16:24)'과 이 가르침의 이면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버리고 떠나 있음(abgeschiedenheit)'의 숙달을 듭니다. 세상사를..

견성, 누진통, 번뇌의 소멸

몇 번 소개했지만 정은해 님의 유교명상론에서 큰 교훈은 군자가 반성의식을 구사해서 노력하다 보면 반성의식이 필요 없이 덕행이 저절로 발하는 성인의 단계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반성의식이라 함은 현상학에서 가져온 말인데 제가 보기엔 구방심과 반구저기를 말합니다. 즉 일일삼성한다 할 때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도달한 경지를 공자님은 종심소욕불유구라 하셨고 제가 보기엔 불가의 누진통에 해당합니다. 누진통은 백성욱 선생에 따르면 견성이고 견성이란 흔히 말하는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번뇌가 사라지고 그야말로 인생 문제를 다 깨쳤기에 당장이라도 몸을 벗고 다음 생으로 들어갈 준비가 다 됐습니다. 호킨스 박사 노선에 따르면 의식지수 600에 도달했기에 이승과 다음 생이 완전히 무차별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