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 15

꿈 얘기와 관음 설화

지난 밤 꿈에서 전 직장에 있었는데 사무실 두어 곳이 먼지가 풀석이고 폐기 기간 지난 서류가 가득한 모습과 치워지지 않은 오물이 덕지덕지한 화장실을 봤습니다. 누군가에게 우리 이거 다 태워버립시다고 말했습니다.이곳에 몇 번 소개했지만 관음경 설화를 보면 경전을 읽는 동기는 누구에게나 같다고 생각됩니다. 예쁜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관음경 읽기에 도전하는 20명의 청년은 삶에서 치유와 문제해결을 바라서 절이나 교회에 가는 우리 모습입니다.하지만 설화가 제시하는 답은 경전의 가르침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녀와 결혼을 허락받은 청년에게는 빈 풍경만이 제시됩니다. 가르침을 체험한 자가 결혼하러 가는 설정이 모순되긴 하지만 결론은 그렇습니다. 아마 호기심 가득한 독자를 위한 설정이지 싶습니다.동아시아 영성..

단상 2018.11.29

개인 구원과 세상 구제

인간 에고의 충동이 사라지고 신 의식이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 동서 영성의 공통과제로 파악됩니다. 이것이 성취될 때를 부처의 집안에 태어난다, 또는 천국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신 의식이 주인되어 다스릴 때 천국이 성취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에고는 신 의식의 충직한 신하 또는 종으로서 그 권능을 집행하게 될 것입니다. 실존적으로는 일관된 지향으로 신 의식을 따르는 결단을 꾸준히 항구하게 내리는 일입니다. 신의 뜻을 내면에서 명상 기타의 방법(저는 주역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으로 확인하며 가는 것이 영성의 길인 반면 가시적 권위에 의제하여 지배구조로 만든 것이 왕정과 종교 교단이라고 봅니다. 이론상 모든 이가 영성의 길을 가서 신 의식을 따를 때 집단 의식으로서 지구의 지배 의..

단상 2018.11.26

신인합일의 길

저는 동아시아에서 도라 함은 시공을 초월하면서 무소부재한 부동의 동자, 즉 서양 철학의 신과 같다고 봅니다. 그렇게 텍스트를 읽으면 신을 인격으로 보아 초래한 기독교의 과오를 초월하는 훌륭한 영성적 실천 지침을 얻습니다. 동서 불문하고 이 영성을 제대로 체험하고 실천하면 초기 기독교나 동학처럼 계급차별 없는 변혁의 동력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 가르침은 소수를 위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전락하여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전지구적으로 극복의 대상이 되었으며 대안으로 동양 영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신에게 가는 것 또는 신과 일치하는 것은 내가 신의 일부라는 것과 일부이긴 하지만 홀로그램 원리상 신과 동일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길은 소위 에고라는 것..

영혼의 유일한 목적

오랜만에 딸이 와서 송도 현대프리미엄 아웃렛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와보는데 20여년 전 미국에서 본 풍경과 거의 비슷해서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식사중에 딸이 했던 '직장 초년에 남는 시간은 돈을 쓰는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요지의 말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 과거도 그렇고 두 아이의 직장생활을 들어보니 기계와 같은 사회 시스템에 매몰된 시간을 벗어나면 소위 레저란 시장이 요리하는 대로 열심히 소비하는 일이 됩니다. 20여년 전, 제 경우는 주말이면 아내와 성당에서 살다시피 했기에 그나마 조금 나은 듯했지만 그것도 계명의 준수를 좀더 심하게(?) 한 것일 뿐 진정으로 해방된 삶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자칭 종교 졸업생입니다. 결과적으로 삶이 참 ..

도덕경과 '대학'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婴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 도덕경 10장을 옮겼는데요 '대학'의 핵심과 같다고 여겨집니다. 전반부 요지는 심령 깊이 도 하나를 붙들고 놓치지 말며 기운은 아이처럼 유지하고 마음을 티끌 하나 없이 정화하라는 것이고 후반부는 그렇게 할 때 나라를 경영하는데 막힘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치국평천하'가 '격물치지 성의정심'에 있다는 대학의 취지와 꼭같다고 생각합니다. 우징숑 님에 따르면 '도'란 초월적이면서 우리 깊은 심중에 머물러 있는 것(동서의 피안, 205쪽)이므로 제가 볼 때 동아시아인은 사실상 서양의 신과 똑같은 실체를 공경하며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신기독'의 실천은 바로..

단상 2018.11.17

선의 황금시대 후기

어제 글의 연장이자 책의 후기 삼아 씁니다. 속물성에 대해서는 '알랭 드 보통'이 '불안'이란 책에서 심도 있게 다뤘지만 제가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금전적 이익과 물적 소유 그리고 몸의 즐거움밖에 없는 듯이 삽니다. 그러면서 정신은 고귀한 것을 흉내냅니다. 두 번째로 이승 삶이 단판 승부인 것처럼 삽니다. 후생을 믿더라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세 면죄부 구매자들입니다. 그들이 대개 부호나 권력자였다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내면이 고귀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위선자이며 예수는 위선자를 깨우치기 위해 심하게 나무란 일도 있습니다.한편 저 자신도 속물을 완전히 벗어난 자는 아니지만 우리는 대개 '나는 해당 없다'는 심사에서 속물을 경멸합니다. 바이블도 마찬..

전심법요 입문 2018.11.16

훈련으로서의 마음 공부

'선의 황금시대' 논지의 핵심은 중국 선불교란 결국 외래종교인 불교와 자생종교인 도교가 하나되어 진화 발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노장 사상은 장자가 시도한 대로 이미 유교와 융합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고 선생을 사숙하는 저로서는 혜능의 맥을 잇는 두 줄기 가운데 청원 행사와 석두 희천 밑의 약산 유엄에 주목하면서, 다른 줄기인 남악 회양과 마조 도일 밑의 황벽 희운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약산은 선종이 아니라 율종에 입문했다가 석두 희천과 마조 도일을 모두 모신 분입니다. 관료였던 이고 선생은 약산 유엄의 명성을 듣고 방문하여 깨우침을 얻었으나 당말의 척불 추세에 가담하여 말하자면 자신의 깨우침을 유교 언어로 바꾸어 복성서를 지으신 분입니다. 복성서는 주렴계와 주희에게 전승되어 신유학의 도화선이 되었..

전심법요 입문 2018.11.12

혜능의 근본 통찰 (2)

어린 시절에 혜능은 땔감을 팔아 가사를 도와야 했기에 문자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땔감을 배달하고 돈을 받고 돌아서던 혜능은 문간에서 경전을 외는 소리를 듣자마자 곧바로 그 뜻을 깨쳤다고 합니다. 혜능이 깨달음을 얻게 된 말씀은 금강경의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것입니다. 혜능은 참된 본성을 왕에, 마음을 그 나라와 신하에 빗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성은 마음 속에 머물고 마음은 본성의 움직임(책 84쪽)을 말합니다. 금강경의 말씀을 잘 들여다보면 마음은 부림의 대상입니다. 즉 본성의 쓰임새(用)일 뿐입니다. 선의 궁극 목적은 자신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불성을 얻는 것인데 마음을 써서 알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하가 왕을 확실히 알아보고 왕의 뜻대로 움직..

전심법요 입문 2018.11.11

혜능의 근본 통찰 (1)

혜능에게는 5대 제자가 있었는데 남악 회양, 청원 행사, 남양 혜충, 영가 현각, 하택 신회가 그들입니다. 이 가운데 회양과 행사 휘하에서 약 200년에 걸쳐 가르침이 계승되어 선문오종이 생겨났습니다. 선문오종이라 함은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 위앙종, 임제종인데 모두 혜능의 근본통찰의 변주라고 봐야 합니다.혜능의 근본통찰이라 하면 먼저 외부 현상이란 모두 우리 본성 또는 진면목이 되비친 모습이나 메아리일 뿐이므로 본성을 바라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혜능은 경전에 의존하지 않고 문답을 통해 산모를 도와주는 산파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이 점은 동굴의 우화를 설하고 대화를 통해 그리스 사람들을 깨우치려 했던 소크라테스와 매우 흡사하게 여겨집니다.혜능은 비전(秘傳)을 묻는 중에게..

전심법요 입문 2018.11.10

혜능의 길과 신수의 길

육조 혜능의 스승인 오조 홍인은 "마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제 아무리 불법을 공부해도 소용이 닿지 않느니라. 마음의 참모습을 알고 참된 자신을 찾은 사람은 사람됨을 깨달은 자, 신과 인간을 가르치는 사람, 곧 부처니라"고 하면서 혜능에게 몰래 옷과 밥그릇을 전합니다. (선의 황금시대, 61쪽)"혜능과 쌍벽을 이룬 제자 신수의 가르침은 계정혜를 닦음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기 좋은 중하근기를 이끄는 대승의 길인 반면 즉각적인 깨달음을 말한 혜능의 가르침은 최상승의 근기를 가진 사람의 길이라 하겠습니다. (위 책, 66쪽). 혜능의 길은 단박에 참된 자신을 찾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죄를 피하고 선을 행하게 되며 형언할 수 없는 자유와 평화를 누립니다. 반면 신수의 길은 계정혜 또는 육바라밀을 ..

전심법요 입문 2018.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