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목운
'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8/07'에 해당되는 글 7

  1. 2018.07.15 뛰어난 노후 대책
  2. 2018.07.14 전심법요와 명상
  3. 2018.07.09 '편지'의 의식 지수(1)
  4. 2018.07.07 지관을 닦음
  5. 2018.07.06 육신의 필요성
  6. 2018.07.02 원수 사랑의 경지
  7. 2018.07.01 혼이 담긴 삶
2018.07.15 07:44 단상
붓다께서 남의 고통을 보고 공부를 시작하셨다면 저는 제 고난과 자초한 화를 벗어나고 복을 지으며 다음 생을 돌보기 위해 나름 전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저 참으며 내면을 돌보는 일에 주력했는데 환경이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 공부에서 가장 주력한 것이 의식의 안팎이 여일하도록 하는 일(유교의 誠)입니다. 그러기 위해 혼자 있을 때 지행(止行)을 닦는 것입니다. 지행이라 함은 말 그대로 가만히 있되 생각과 말이 끊어진 자리에 머물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지행을 돕는 방편이 염송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지행은 신 의식과 함께하는 것이며 유교의 중(中)에 해당합니다. 지행으로 얻어진 마음으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관행(観行)이자 유교의 화(和)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원론으로 된 세상의 편견을 모두 벗어나 비이원성에 이를 때까지, 그리하여 기쁨과 평화가 존재를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향상하여 간다면 몸을 버린 후 삶에 대해서도 매우 안심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공부해간다면 노후 대책으로 그 무엇보다 우수한 것이 되지 싶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뛰어난 노후 대책  (0) 2018.07.15
혼이 담긴 삶  (0) 2018.07.01
일상 속에서 명상  (0) 2018.06.28
제 공부 얘기  (0) 2018.06.26
창조과정 활용  (0) 2018.06.20
축구보다 중요한 것  (0) 2018.06.19
posted by 목운
2018.07.14 07:28 공부의 요령과 요점
오늘은 동아시아 최고 영성이라 할 수 있는 황벽 선사의 전심법요에서 인용합니다. 황벽 선사는 제가 사숙하는 이고 선생과 동시대 사람이며 전심법요는 대승기신론을 다시 강조한 말씀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저는 정신분석학자 호킨스 의식지도가 과학이라 보는데 [그의 저술 '의식혁명'은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박사에 따르면 황벽 선사의 의식 지수는 960이고 저술은 850입니다. )

전심법요 첫머리는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서도 반복되는데 다음 두 구절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부처와 중생이 오직 이 한마음이어서 다른 실체가 없다. 이 마음은 시작도 없고 어디서 낳음을 받은 것도 아니고 멸하지도 않는다(諸佛與一切衆生 唯是一心 更無別法, 此心 無始以來 不曾生不曾滅)." "생각을 그치고 잡념을 잊으면 부처가 저절로 앞에 드러난다(息念忘慮 佛自現前)."

대승기신론의 실천 핵심은 지관문이고 이 두가지 가운데 지행은 바로 생각을 그치고 잡념을 잊기 위해 홀로 고요히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수행의 핵심은 도교에서는 좌망으로, 기독교에서는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라(forget self)[마태 16:24]'로 정식화되어 있습니다. 명상은 바로 신 의식을 접하는 수단이며 영혼으로 살려는 노력에 다음 아닙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심법요와 명상  (0) 2018.07.14
지관을 닦음  (0) 2018.07.07
그리스도의 편지 명상법  (0) 2018.06.30
명상을 습관들이기  (0) 2018.06.29
내면으로 가는 길  (0) 2018.06.17
수도와 해방  (0) 2018.06.07
posted by 목운
2018.07.09 02:57 그리스도의 편지

제가 '신과 나눈 이야기'가 호킨스 의식 지수 540임을 확인하고 가지고 있는 네 권을 복습중입니다. 이 가운데 '편지'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을 인용합니다.

"대규모 공동체나 집단은 종종 결합된 생각(혹은 공동 기도)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찾아낸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기도, 소망, 바람, 꿈, 두려움)이 놀랄 만큼 강하다면 개인 역시 당연히 그런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예수는 일상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 그는 에너지와 물질을 어떻게 다루며 어떻게 재배열하고 어떻게 재분배하며 어떻게 하면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대다수 선각자들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다. (신나이 1, 95쪽)"

이러한 구절을 미루어 짐작하면 '편지'도 540 이상 깨달음에서 나온 책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식 지수 540 이상은 깨달음에서 나오는 말씀이므로 꾸준히 읽으면 우리 의식이 거기에 편승해서 높아진다는 것이 호킨스 박사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호킨스 의식 지수가 확인된 책 가운데 제가 참고하는 책을 덧붙여봅니다.

바가바드 기타 910, 전심법요와 완릉록 850, 조하르 730, 금강경 700, 도덕경 610, 기적수업 600, 베티이디의 임사체험기 '그 빛에 감싸여' 595. 아직 의식 지수 측정치는 없지만 7세기에 지어진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와 별기' 및 8~9세기에 지어진 이고의 '복성서'는 동아시아에서 천 년 이상 수행의 교과서 구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의 의식 지수  (1) 2018.07.09
육신의 필요성  (0) 2018.07.06
원수 사랑의 경지  (0) 2018.07.02
천국이라는 존재 상태  (0) 2018.06.24
치유의 비결  (0) 2018.06.15
구세주의 의미  (0) 2018.06.12
posted by 목운
2018.07.07 06:51 공부의 요령과 요점

초심자로서 다음과 같은 에고가 수시로 제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험담하기, 앙심 품기, 분노, 비판, 판단, 폭력, '더 낫다'는 자부심, 해고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러한 결함들은 실상 에고 또는 소아(小我)의 일반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다만 영원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더 낫다는 선민 의식 그리고 선악 분별과 정의에 대한 집착 및 확신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기독교 사회에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거의 모든 가르침이나 처세술은 근본 처방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능합니다. 왜냐하면 에고로써 (또는 에고 상태에서) 에고 다스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以情止情, 是乃大情也. 복성서 2절)을 모르거나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해답은 선악과 먹기 전 상태인 무분별지를 체험해서 참나 또는 영혼 또는 신 의식 상태에서 무조건적 사랑과 무차별한 친절을 실천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대승기신론 용어로 하면 '여래의 집에 태어나서 부처의 지위를 이어야' 합니다. 즉 부처의 자비심인 동체대비를 일으키는 것이 답이며 그러기 위해 지관의 두 문을 닦으라는 게 대승기신론의 요지입니다. 서양의 전통에서는 플로티누스가 체험한즉, 이분법을 극복한 '하나(Oneness)' 상태가 되는 것인데 이는 힌두 전통의 비이원성(nonduality)과 같다고 봅니다.

지관문 가운데 지행의 출발점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 뜻을 바로 세우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진여삼매를 얻어 진보의 터전이 확고히 서는 것을 불퇴전(不退轉)을 이뤘다고 합니다. 관행 또는 관을 닦는다 함은 지행에서 얻은 진여삼매로써 세상 것이 몽환포영인 줄 알아 끝없이 보시를 하고 중생을 깨우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관 이문은 유교에서 중화(中和)에 해당합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심법요와 명상  (0) 2018.07.14
지관을 닦음  (0) 2018.07.07
그리스도의 편지 명상법  (0) 2018.06.30
명상을 습관들이기  (0) 2018.06.29
내면으로 가는 길  (0) 2018.06.17
수도와 해방  (0) 2018.06.07
posted by 목운
2018.07.06 05:45 그리스도의 편지

우주의 창조 차원 문턱까지 진동주파수가 상승한 개체 의식은 <개체화된 빛> 또는 <개체화된 의식>이 되는데 이 <거룩한 의식>은 지고의 영적 세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누리는 데 육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고를 높이 초월하지 못한 이들이 경험하는 욕구와 욕망과 충동 따위가 없는, 존재의 지극히 황홀한 상태다.

지상에 사는 동안에는 너희 마음이 진동주파수의 특정 변수에 고정되어 있어서 육신 속에 갇힌 채 육신의 고유한 욕구를 지닌다. 의식이 진정 그런 변수 너머로 솟아오르면 너희 세속적 자아는 사라질 것이다. 나 또한 육신 속에 갇혀 있었을 때는 대체로 이런 진동주파수와 의식 속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상상력만으로는 이전 경험을 넘어 솟아오를 수 없기 때문에 너희는 자신의 과거에 한정되고 그것을 미래로 투사한다. (205~206쪽)

-- 임사체험자들은 육체를 무겁고 누추한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몸을 버린 후에 몸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다고 합니다. 에고를 초월한 개체화된 의식만의 상태에서 보고 느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시야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 사막 수도자들 이래로 존재의 지극한 황홀 상태에 대한 체험은 대체로 '신과의 합일'이란 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진 체험을 해보는 것은 이런 체험이 없이는 그 황홀함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란 것도 모든 영성 서적이 일치합니다. 그래서 많은 문학작품들은 누구에게나 영적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의 의식 지수  (1) 2018.07.09
육신의 필요성  (0) 2018.07.06
원수 사랑의 경지  (0) 2018.07.02
천국이라는 존재 상태  (0) 2018.06.24
치유의 비결  (0) 2018.06.15
구세주의 의미  (0) 2018.06.12
posted by 목운
2018.07.02 04:55 그리스도의 편지

그들은 강한 확신이 바라고 상상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자신의 정신적-감정적 상태를 항상 주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타인에 대한 앙심을 속에 품지 말고 재빨리 용서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큰 해를 입힐 수 있고... 그것은 조만간 스스로 뿌린 것의 결실로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그들이 뿌린 그대로 돌아온다. 나는 내가 무화과 나무에게 한 짓이 어떤 형태로든 내게로 불가피하게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193쪽)

-- 무화과 나무에게 일어난 일은 교회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저 예수 우상화만이 답인 줄 알고 그 일마저 찬사를 보내는 것이 교회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난 전 두려움과 여러가지 현실적 걱정 때문에 하느님과 일체를 이루던 의식이 진동수가 떨어지면서 비이성적 행동을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즉 "그것은 충격적 경험이었고 내 말이 무엇인가에 해를 끼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192쪽)"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제자들에게 보여준 점과 의식이 높을수록 말이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깨닫게 한 점은 긍정정 효과라면 효과라고 합니다. 제 경우도 의식은 그다지 높지 않지만 비슷한 체험을 하였는데 몇 달 전 MBC와 연합뉴스의 보도 방식이 매우 고약하고 악랄하다고 판단하고 전화를 하여 마구 저주를 퍼부은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딸과 아내도 수구 세력에 대한 적대감을 마구 표현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던 차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과 태도를 바꾸지 않고 고집한 결과라고 추정하는데 엊그제는 직장 동료가 저를 마구 곡해하면서 매도하고 적대하며 심지어 없애버리고 싶다고 공격하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2~3일 열심히 기도하면서 도움을 구하였더니 오늘 명상 중에 그 모든 게 이해되었습니다. 수차에 걸쳐 꿈에서도 제 폭력성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는 체험을 두어번 했거든요! 그럼에도 그런가보다 하고 고치질 않았습니다. 

직장에서 겪은 경험을 돌아볼 때 아주 '리얼하게' 제 심사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적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용서하고 나아가 결코 선악이나 적과 동지 여부를 심판하지 말 것이며 바이블 말씀대로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실제로 가장 고치기 힘든 심사를 포기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해서 원수를 사랑하는 경지까지 가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의 의식 지수  (1) 2018.07.09
육신의 필요성  (0) 2018.07.06
원수 사랑의 경지  (0) 2018.07.02
천국이라는 존재 상태  (0) 2018.06.24
치유의 비결  (0) 2018.06.15
구세주의 의미  (0) 2018.06.12
posted by 목운
2018.07.01 07:15 단상

혼이 담긴 일을 하여 길이 기념할 만한 삶을 산 경우 도덕경이 말하는 바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死而不亡者壽)'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는 몸과 마음의 차원에서만 사는 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위인들은 몸과 마음으로, 혼의 일 또는 혼이 담긴 일을 합니다. 혼 또는 영혼은 신의 분신입니다. 신이 바라는 일을 전력을 기울여 한다면 그것이 바로 몸과 마음을 바쳐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신으로 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경지는 남과 비교하거나 과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과 마음 차원의 삶을 넘어서기 위해서 세상 것을 끊고 홀로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붓다와 그리스도는 그 모범이기도 합니다. 중용의 경우는 신의 뜻이 새겨진 바의 혼을 성(性)이라 했고 성을 따르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치우는 것을 수도라 했습니다. 유교에서 수도의 핵심은 남명 선생이 강조하신 바의 경(敬)인데 경이란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나만의 'Be-Do-Have'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혼이 담긴 삶이 된다고 봅니다. 단 하나의 명확한 나만의 'Be-Do-Have'를 찾고 실현하는 것이 바로 '잘 사는'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노선으로는 화엄경이 제시하는 바의 보살이 되는 것인데 현대적으로 풀면 의식이 진화하여 '무조건적 사랑(호킨수 의식지수 540)'이 되는 것입니다. 그 방편은 대승기신론이 제시하는 6바라밀이 가장 좋아보입니다. 

한편 그저 명상에서 얻어지는 열반 또는 지복상태가 끝이라고 보면 소승이고 지복의 에너지로 중생을 구제하는 삶을 살면 대승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뛰어난 노후 대책  (0) 2018.07.15
혼이 담긴 삶  (0) 2018.07.01
일상 속에서 명상  (0) 2018.06.28
제 공부 얘기  (0) 2018.06.26
창조과정 활용  (0) 2018.06.20
축구보다 중요한 것  (0) 2018.06.19
posted by 목운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