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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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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06'에 해당되는 글 24

  1. 2018.06.20 창조과정 활용
  2. 2018.06.19 축구보다 중요한 것
  3. 2018.06.18 생각을 멈춰라
  4. 2018.06.17 내면으로 가는 길
  5. 2018.06.16 평화와 번영
  6. 2018.06.15 치유의 비결
  7. 2018.06.13 평화를 위한 공부
  8. 2018.06.12 구세주의 의미
  9. 2018.06.11 제자로서의 삶
  10. 2018.06.10 우리 존재의 목적
2018.06.20 06:05 단상

'신과 나눈 이야기(약칭 신나이)'가 의식지수 540(여기부터가 깨달음 상태임)이라는 걸 확인하고 다시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실상 과거에 건성 읽은 셈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구절을 가져오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창조 과정을 작동하는 방식은, 먼저 "갖고" 싶은 게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을 "가진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자문해본 다음, 곧 바로 그런 '되어 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행복해하고 "있는" 사람은 진짜로 중요한 온갖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필요한 모든 돈과 평생 지속되기에 충분할 만큼 사랑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너희가 미리 무엇이 되기로 정하는가가 그것을 너희 체험으로 만들어낸다. (신나이 3, 30~31쪽)」

요컨대 진실은 'Have-Do-Be' 순이 아니라 'Be-Do-Have' 순으로 이뤄지는 게 진리에 부합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보통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부자가 되어 행복해지려 하지 말고 바로 행복해지면 참된 부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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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19 07:29 단상

숙직 서고 퇴근하니 아내가 축구 져서 실망인 듯 말을 붙입니다. 물론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아내에게 김대중 대통령 당선되고 광주 출장 갔던 얘기를 했습니다. 택시를 탔는데 우연히 야구 얘기가 나와서 '이제 야구 져도 속 안 상하시잖아요!' 했더니 기사님이 박장대소한 얘기입니다.

평생 바랐던 정치지형의 '정상화'를 목도한 때문에, 또 부친 기일을 맞아 아들이 보다 나은 직장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솔직히 어제 일찍 잤던 터입니다. 우연히도 제대로 된 선진국 몇 개를 빼면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 또는 IMF 신세 진 나라들이 한 맺힌듯 축구에 몰입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공자님의 수제자 안회처럼 부동심을 얻으면 생사가 여여하여 바깥 조건에 전혀 동요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인들이 공자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든 것을 보았는데 안회는, 일행이 한 겨울에 호수를 건너는데 마차가 얼음 속으로 빠지자 경전을 건지다가 목숨을 잃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설혹 세상 복락을 모두 잃어버린다 해도 심사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자비를 견지하며 매사 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으로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제 경우는 세상의 입구가 아득한 반면 출구는 눈 앞에서 어른거리니 더욱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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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18 05:34 단상

제가 어떤 이상적인 인간상, 혹은 성공한 모습을 그리고 '드라이브'를 걸어 노력해봐야 전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에고로 에고를 다스리려는 것이어서 결국 에고놀음이기 때문입니다(복성서 2절, 以情止情 是乃大情也). 결국 스승들이 공통으로 말씀하시는 대로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인용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홀경을 찾아낼 곳은 너희 내면이다. 거기에서 너희는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군지' 기억해낼 것이고, 거기에서 너희는 다시 한번 자기 외부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체험할 것이다. 거기에서 너희는 나와 닮은 꼴로서 너희 형상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그날이 오면 너희의 다른 모든 필요는 사라지리니 마침내 너희는 진실로 사랑하고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그냥 고요히 있어라. 그 고요 속에서 너 자신과 더불어 있어라. 자주 이렇게 하라. 날마다 이렇게 하라. 아니 가능하면 시간마다라도 잠깐씩 이렇게 하라. 그냥 멈춰라. 네가 하는 모든 일을 멈추고, 네가 하는 모든 생각을 멈춰라. 아주 잠깐이라도 잠시 그냥 '있어라'. 그렇게 하는 것으로도 모든 걸 바꿀 수 있다. 날마다 새벽에 한 시간씩을 잡아서 그것을 너 자신에게 주어라. 그 성스런 순간에 그곳에서 너 자신을 만나고 그런 연후에 하루를 시작하라. 네가 다른 사람이 되리니. (신과 나누는 우정, 224~225쪽)"

제가 요즈음 하는 일이 이것입니다. 혼자 하는 일로서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이 길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은퇴후 아주 무력한 느낌이 들 때 이 길에 들어선다면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감히 확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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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17 06:38 공부의 요령과 요점

“내면으로 가라. 내면에 있는 걸 찾으려면 내면으로 가라. 너희가 내면으로 가지 않는다면 너희는 외부로 가게 된다.”

요즈음 다시 손에 잡은 ‘신과 나누는 우정’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생업에 몰두하다 보면 대단한 결심을 하기 전에는 의식이 밖으로만 가게 됩니다. 직장생활 후반에 빠진 가장 큰 결함이 이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은 상당히 오랜 기간 거짓된 삶을 살며 유치하고 비루한 쾌락거리를 찾다가 구렁텅이에 빠져 권태와 우울로 점철된 제 자신을 발견하고 생겼습니다.

악전고투 끝에 매일 규칙적으로 내면으로 가는 일에 충실하면서 이제 신선한 공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듯합니다. 성실치 못한 삶을 살 때도 훌륭한 책들은 많이 읽었지만 읽을 때뿐이었지 무엇 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기에 다시 밖으로만 가다가 길을 잃은 것입니다. 거창하게 명상이라 할 것 없이 무조건 매일 최소 10분 이상 시간을 내어 암송기도든 경전 독서든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승 욕구는 내면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밖의 것들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고 동굴 밖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에서 상승하면 그것은 밖에서 반드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알 수 있게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과 밖이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살 때 거기에서 천국이 시작된다는 가르침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 강조한 신기독(愼其獨)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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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6.16 08:08 단상

나라의 평화와 번영은 최종 목적일까요? 지금 정부는 인문학적으로도 인간성에 그 기초를 제대로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화와 번영은 사람다운 삶, 사람이 먼저인 삶을 위한 조건일 뿐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합의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삶의 바깥 조건에 평화와 번영이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먹고사는 일과 의식이 성장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의식주는 인간다운 삶의 한 가지 조건일 뿐입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의식이 깨어나야 합니다. 의식이 깨어나고 성장하기 위한 공부가 바로 인문학이요 인간학이고 바로 문사철(文思哲)입니다. 문사철의 중심에 고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설혹 의식주에 있어 최저 조건에 놓이더라도 책을 놓지 않아야 인간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내면에 있기 때문에 학습을 하고 매일 노력하는 것(學而時習)이며 안회를 그 모델로 세운 것이 유교입니다.

그런 점에서 평화와 번영에 무능했던 수구 적폐정권은 인문적 삶을 위한 기본을 마련하는 데 무능했다고 평할 수 있으며 철학이 없는 정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가 위협받고 있으며 우리가 있어야 적에게서 지켜줄 수 있다’고만 외치는 자들은 바로 조폭입니다. 그러니 지난 9년 정권은 조폭적 정권입니다. 문재인 정부 1년을 겪고 이러한 진술이 맞다고 주권자들이 확인한 것이 이번 선거의 의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1919년 헌법에 신성의 개념을 도입하고(제7조 : ‘신(神)의 의사에 의해 건국’) 민주공화국을 시작한 이래 100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쳐 ‘아닌 길‘을 지나온 우리가 다시는 후퇴하지 말고 각고의 노력으로 사람다운 사람들이, 사람이 먼저인 공동체를 위하여 매일 노력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이 바로 지상에 천국을 짓는 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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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5 05:39 그리스도의 편지

어떤 사람이 병을 고치려고 나에게로 오면 나는 이내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이신 권능이 내가 청하는 순간 치유해주시려고 내 안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 뜻'이 병이 아니라 건강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뜻'이 병든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병든 사람 몸에서 병에 대한 믿음을 제거하고 '아버지 뜻'인 건강이 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알면> 병이라는 현상(겉모습)도 '아버지 건강'이라는 실재로 바뀌어 몸이 다시금 온전해집니다.

병은 아픈 부위에 일어난 생기의 저하(<생명>의 감소)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신체의 진정한 의도와 계획에 '아버지 생명'을 되찾아주기만 하면 온몸이 제 기능을 회복합니다. (133쪽)

-- 주지하시듯 두 번째 편지는 믿음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첫 번째 편지에서는 사고틀과 감정 습관을 바꾸는 방법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라는 말에서 사람을 그리면 부족 신앙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완벽한 사랑' 혹은 '신 의식'과 동의어입니다. 우리 사고틀과 감정 습관, 그리고 믿음에서 아버지 뜻과 권능을 믿는 단계를 넘어 그 모든 것을 <알면> 우리에게도 치유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이상의 기적을 행한 사례가 쌓이고 넘칩니다. 다만 그러한 체험은 우리 의식 수준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의식이 하루하루 높아지는 것만이 과제입니다. 이 일에 우리 삶을 바칠 가치가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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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08:10 단상

지난 주 오륙일 정도 무언가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과거에 읽던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누는 우정’을 다시 손에 잡았습니다. 2000년경 광고 카피를 보고 접한 월시는 1944년생으로 60년대에 제가 겪은 가톨릭의 분위기와 거의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어 매우 친근감이 있습니다. 그는 대학 중퇴 후 방송 및 언론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책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사회 의식 변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그가 단학을 접하고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설하고 호킨스 의식 지수에 따르면 그가 쓴 책의 진실성 정도는 깨달음이자 무조건적 사랑의 수준인 540이고 그 자신은 이에 조금 못 미쳐 520으로 측정됩니다. 그러나 500 이상은 영적으로 매우 진실하고 누구나 도달하고 싶은 수준입니다. 500 이상의 책들은 바로 사랑의 장에서 나오는 진실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사랑과 용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요즘 매일 묵상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와 일치하는 내용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영적 성장에 있어 에고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기에 관련된 구절을 가져옵니다.

“너희가 일체(또는 만유)와 하나로 있는 그 장엄함을 체험할 유일한 방법은 일체와 하나이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상태나 조건이 있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궁극의 실체인 절대계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어떤 것이 일체와 하나이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대계가 창조된 건 이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환상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너희 에고다. 에고는 자신을 ‘나머지 모두’와 분리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에고는 창조의 과정에 필수적이지만 “에고가 너무 커져서 분리된 자신밖에 볼 수 없다면 합일된 자아를 체험할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너희는 길을 잃고 만다. 너희는 그 환상의 세계에서 그야말로 미아가 되어 많은 생애 동안 길을 잃은 채 그 환상 속에 남아 있게 된다. 너희가 마침내 자신을 거기에서 끄집어내거나 혹은 누군가가 너희를 거기서 끌어낼 때까지. 이것이 ‘자신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이고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라는 개념이 뜻하는 바다.”

하지만 종교는(서양서 종교라 하면 주로 기독교입니다.) 자기네만이 ‘구원받을’ 유일한 길로 선언함으로써 분리의 환상을 도리어 강화했다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올바름에의 집착과 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남보다 더 낫다는 선민의식이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기독교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미국 쪽에서는, 월시는 물론 제가 사숙하는 호킨스의 텍스트에 잘 담겨 있고 영국 쪽에서는 제가 여러 온라인 학인들과 함께 읽는 ‘그리스도의 편지’에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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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05:44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내가 세상에 주는 '아버지'의 구원의 선물임을 알았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가정하고 가르쳐온 것, 즉 분노하는 하느님이 '죄인'에게 내리는 징벌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그릇된 사고(그들의 불행과 궁핍과 병과 비참한 삶을 창조해낸 그릇된 생각들)로써 똑같은 실수를 날마다 반복하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해내는 것 말이다.

나는 인간을 너무나 깊이 사랑했으므로 유대교 제사장들의 배척을 무릅쓰고 가르치고 치유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광야에서 진실로 '보았고' 온 가슴으로 내 능력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해서 나눠주고자 했던 것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내 십자가형 배후의 진실이며 너희가 들은 나머지 모든 것은 성전에서 올리는 유대교 번제 관습에 연루시켜 사람들이 지어낸 억측이다. 나는 인류가 존재의 법칙에 대한 무지에서 헤어나 환희와 풍요와 천국의 완벽함으로 가는 진정한 생명의 길을 찾는 것을 돕도록 '아버지'로부터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124~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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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2:12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단지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충족시켜주고 건강을 줄 것이라는 진실만을 약속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이 아버지를 향하고 가는 길의 발걸음마다 아버지를 신뢰하면 이전에는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약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소아의 요구를 제쳐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려 들게 될 만큼 천국을 몸소 체험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치유를 목격할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믿음을 키워주어서 여행의 불편을 견뎌낼 용기를 줄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과업에 착수하게 된 경위였다. (120쪽)

-- 제자들을 모으고 치유와 가르침을 시작하게 된 경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도 먼저 하늘 나라를 체험함으로써 제대로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가능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사업으로서 봉사를 시작하는 자들이 천국 체험에 게을리 하는 순간 선후가 바뀌고 부패로 들어갈 위험을 지적하는 말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의 체험은 소아의 필요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완전히 신뢰한 바탕에서 그야말로 열반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고나서 매사 신 의식께 청하고 구하고 두드려 얻은 답을 따라서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일은 매일 10분 이상 시간을 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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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0 07:38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내가 삶을 허비하고 있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깨닫게 된 때가 내게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나 자신의 변화를 갈망하여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점으로서 세례 요한에게 가보아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세례받는 동안 그리고 광야에서 보낸 6주일 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실재'를 보여준, 깊은 계시와 깨달음을 얻는 동안 내 이전 생각과 신념과 태도와 자만심과 반항심이 서서히 의식 속에서 깨끗이 지워져간 과정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버지의 본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 '신성한 본성'에는 '신성한 뜻'도 포함되어 있음을 설명했다. 나는 그릇된 사고와 행동으로 자기 안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자신을 차단한 것도 인간 자신이며 먼저 회개하고 그 다음에 정신적 감정적 찌꺼기를 청소함으로써 '아버지'를 온전히 만나게 해줄 자기만의 길을 찾을 수 있는 것 또한 인간 자신밖에 없음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본성이 그 사람 마음과 가슴과 몸과 영혼과, 삶의 환경과 경험 속으로 온전히 스며들어갈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그 사람은 아버지가 다스리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또한 그의 의식 속에도 천국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존재 배후에 있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118~119쪽)

-- 그리스도가 날 때부터 완벽한 신으로 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알게 하는 구절입니다. 뛰어난 역사학자 백승종 선생의 글을 읽으면 이순신 장군처럼 본인의 기록이 명료히 남지 않는 경우 영웅들은 쉽사리 민중의 입맛에 따라 신격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격화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으며 어쩌면 다행인 것은 로마 제국이 세속적 필요에 따라 기독교를 강한 이데올로기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동양의 메시아로 여겨졌던 반란자들과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구절에는 기독교 신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즉 기독교의 성인이 되는 길로서 거비정화-진덕명화-신인합일이 명시되어 있으며 천국이란 아버지 즉 궁극의 실재로 꽉 찬 경지, 즉 아버지가 다스리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리문답의 첫 번째에 나오는 삶의 목적에 대해서도 답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천국을 세워 그것을 누리는 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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