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목운
'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2017.12.11 06:58 호킨스 방하착

"마음을 삼간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안회가 물었다. 이에 공자가 대답했다. '네 뜻을 하나로 모아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영혼으로 들어라. 귀의 작용은 듣는 것에 그치며, 마음의 작용은 형상과 관념에만 그친다. 영혼은 비어 있으면서도 모든 것에 반응한다. 

도는 이 빈 곳에 거처하니, 비우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삼가는 일이니라." "내가 마음을 삼가는 법을 익히는 것을 가로막았던 것은 나 자신 안에 있었을 뿐입니다. 마음 삼가는 법을 수련하자마자, 저는 나 자신이라는 것이 애당초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운다는 것이 바로 이를 뜻하는 것입니까?" "옳다. 바로 그것일 뿐이로다!" [回曰:「敢問心齋。」仲尼曰:「若一志,无聽之以耳而聽之以心,无聽之以心而聽之以氣。聽止於耳,心止於符。氣也者,虛而待物者也。唯道集虛。虛者,心齋也。」顏回曰:「回之未始得使,實自回也;得使之也,未始有回也。可謂虛乎?」夫子曰:「盡矣。吾語若!」]

-- 장자 내편 인간세에 나오는 공자님과 안회의 대화입니다. 장자의 수양법, 즉 도교 수행법의 핵심인 심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 번역은 현대 중국 최고 지성 가운데 하나인 우징숑(吳經熊) 님 번역입니다. 우 박사가, 선불교란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와 중국 도교를 부모로 하는 자식이라고 했듯이 우리가 익숙한 선불교는 도교를 계승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도교 핵심 경전 가운데 하나인 장자에서 공자님과 안회를 서두에 인용한 것으로 볼 때 유교 또한 도교와 뗄 수 없이 표리를 이루는 종교입니다. 제가 매일 묵상 자료로, 또 수행 자료로 호킨스 님의 '내려놓기'를 인용하는데 그것은 호킨스 박사의 수행법이 손에 잡히는 매우 실용적인 방법인 데다 위 유불도의 핵심 수행법과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는가?  (0) 2017.12.11
의식 향상의 두 방편  (0) 2017.12.10
반전의 씨앗  (0) 2017.12.08
내려놓기 요령 (재론)  (0) 2017.12.07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posted by 목운
2017.12.10 03:09 호킨스 방하착

감정 상태가 낮은 수준에 있을수록 자신의 삶은 물론 주변 모두에게 그만큼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감정상 진보 수준이 높을수록 모든 면에서 삶이 긍정적으로 되고 주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버리면 그만큼 자유케 되고 의식 지도를 따라 향상하며 드디어는 압도적으로 긍정적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낮은 수준의 감정은 모두 장애물이어서 우리의 진정한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내려놓기를 통해서 의식 지도를 따라 향상하여 정상에 가까와지면 새로운 형태의 체험을 하게 된다. 정상에 이르면 자신의 참나를 실현하게 되며 가지각색의 조명(照明, Illumination)을 겪게 된다. (33~34쪽)

-- 참된 신분상승이 어디에 있는지, 내세 진입을 위한 제대로 된 준비가 무엇인지 감이 안 잡힐 때 의식 향상을 목표로 하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길이 바로 이것이며 내면에서 의식이 향상하면 외부 환경이 거기에 걸맞게 변한다는 것은 제 체험으로 입증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끝없이,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그리고 무한히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 것입니다. 반복하자면 단 두 가지 방편을 꼭 쥐고 가야 하는데 그것은 명상과 감정 내려놓기입니다. 제 동학(同學)이 정신세계사 카페와 페이스북 그룹 합쳐서 100명 안팎이 되니 작은 교회가 부럽지 않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는가?  (0) 2017.12.11
의식 향상의 두 방편  (0) 2017.12.10
반전의 씨앗  (0) 2017.12.08
내려놓기 요령 (재론)  (0) 2017.12.07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posted by 목운
2017.12.08 04:47 호킨스 방하착

삶의 위기는 무엇이나 그 안에 반전의 씨앗, 쇄신, 확장, 의식의 도약, 그리고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 것이 탄생할 계기를 가져온다. (40쪽)

-- 멘붕을 가져올만한 위기에서 지적인 차원이 아니라 감정 차원에서 사안들을 잘게 쪼개서 하나하나의 감정을 내려놓고 보내버리게 되면 위기의 기회는 극적으로 단축된다고 하는 고언을 담고 있습니다. 즉 절망이 압도하는 상태에서라도 가급적 하위의 감정인 슬픔, 두려움, 자부심, 분노, 원망 등을 쪼개서 하나하나 버리게 되면 결국엔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상 제가 읽은 성인전에서 보더라도 인생이 폭망한 상태에서 마치 험난한 산을 기어오르듯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 분들이 과반은 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삼재라고 하는 손재수, 병고, 이별 등에는 반드시 은총의 싸인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는가?  (0) 2017.12.11
의식 향상의 두 방편  (0) 2017.12.10
반전의 씨앗  (0) 2017.12.08
내려놓기 요령 (재론)  (0) 2017.12.07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posted by 목운
2017.12.07 07:30 호킨스 방하착

감정에 대해 잘 모르면 거기에 대해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 없이 그저 관찰하도록 권한다. 이렇게 하면 감정과 생각의 관계가 조금 분명해진다. 그리고나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치워두고 거기에 관련된 감정을 확인해본다. 다음에 거기에 저항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우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어서 그것이 사라질 때까지 내려놓음으로써 감정에 담긴 에너지를 비운다. 좀 지나면 처음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의 성격이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해당 감정을 완전히 버리고 내려놓게 되면 보통은 그와 관련된 모든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고 사안을 신속히 처리할 결말이 있는 생각이 들어선다. (34~35쪽) 

-- 실천적으로는 가만히 앉아서 자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책에서 드는 예를 볼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솔직히 자문할 때 이별의 슬픔이라든지 홀로 될 두려움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알아차리는 순간 평화가 오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나 제가 어쩌면 단순한 원리를 자주 반복하는 것은 이것이 참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아니라 감정을 관찰하면 자각(self-awareness)이 아주 급속히 커진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 삶의 기조를 이루는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을 정확히 다룬다면 생각과 싸우는 것보다 커다란 혜택을 아주 짧은 시간에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34쪽 참조). 위 인용문을 실천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책을 읽는 노고를 절약하는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식 향상의 두 방편  (0) 2017.12.10
반전의 씨앗  (0) 2017.12.08
내려놓기 요령 (재론)  (0) 2017.12.07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감정 내려놓기와 명상  (0) 2017.12.05
posted by 목운
2017.12.06 04:52 호킨스 방하착

일반적으로 의식 지도(감정 지도)의 낮은 쪽은 낮은 진동 주파수, 낮은 에너지, 낮은 힘, 가난한 환경, 어려운 관계, 궁핍, 사랑의 결핍, 육체적 감정적으로 빈약한 건강 상태 등과 관련된다. 그렇게 궁핍한 사람들은 모든 차원에서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들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지며 그들과 맞는 수준끼리 모인다(예, 감옥).

부정적 감정을 버림에 따라 효과가 커지며, 성공적이 되며, 더 쉽게 얻는 풍요가 함께한다...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은 자신과 남에게 진실을 말하는 데 있다...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버림에 따라서 우리는 더 자유로와지며 의식 척도를 따라 올라가서 결국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체험하게 된다. (32~33쪽)

-- 호킨스 님의 의식지도는 인간으로서 최고에 도달한 그리스도와 붓다의 의식을 로그 지수로 1,000으로 삼고 박테리아 수준의 의식을 1로 삼아 도식화했습니다. 이 의식 지도가 인간의 대표적 감정에도 부응하는데 우리가 평소에 느끼는 지배적 감정으로 자신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표시했습니다. 즉 평화(600)-기쁨(540)-사랑(500)-이성(400)-수용(350)-기꺼움(310)-중립(250)-용기(200)-자부심(175)-분노(150)-욕망(125)-두려움(100)-슬픔(75)-무력감(50)-죄의식(30)-수치심(20)으로 되어 있습니다. 

꾸준히 감정 내려놓기를 하여 높은 의식의 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자신의 지배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참나를 더욱 인식하게 되고 빛의 밝아짐을 느끼게 됩니다(이것을 기독교 신비주의에서는 조명[Illumination]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에고 초월이고 동아시아 영성에서는 극기(克己)라고 하여 중요한 성찰 대상입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에고를 이해하는 것이고 에고를 이해하는 것은 에고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라 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전의 씨앗  (0) 2017.12.08
내려놓기 요령 (재론)  (0) 2017.12.07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감정 내려놓기와 명상  (0) 2017.12.05
감정 버리기는 에고 버리기  (0) 2017.12.03
posted by 목운
2017.12.05 09:49 호킨스 방하착

감정은 마음의 처리기능보다 더 기초적이고 근원적이다. 이성은 마음이 그 감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다. 바닥에 깔린 감정을 사용할 때 보통은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바닥에 깔린 감정을 모르거나 잊을 때 사람들은 자기 행동의 원인을 모르며 따라서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발전시킨다. 실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왜 선택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27쪽)

-- 따라서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을 계속하라고 권합니다. 이 질문을 끝까지 해보면 마지막에 만나는 이유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거나 행복해지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감정이란 실제 그래서가 아니라 생존을 보장해준다고 믿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28쪽 참조)

제 경우도 그랬지만 우리는 홀로 있을 때 불안하고 외롭기 때문에 사람들을 찾아나서고 사업을 벌입니다. 그래도 다시 혼자 되면 끝없이 무언가 파적거리를 찾습니다. 하지만 명상을 꾸준히 하고 나서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렵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나설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해 애덕(사랑)이 요구하는 일만 할 수 있게 됩니다. 명상은 진정한 연금술이자 유일하게 올바른 우회생산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려놓기 요령 (재론)  (0) 2017.12.07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감정 내려놓기와 명상  (0) 2017.12.05
감정 버리기는 에고 버리기  (0) 2017.12.03
내려놓기에서 만나는 저항  (0) 2017.12.02
posted by 목운
2017.12.05 09:31 호킨스 방하착

인간은 무엇보다도 더 이상 체험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이 목적을 위해 몸의 생존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것은 몸이 자신이며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체험하는 데 몸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을 분리되고 유한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손실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필요의 충족을 위해 외부를 살펴본다. 이 때문에 자신만으로는 부족하며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체험한다. 결론적으로 마음이란 생존 도구이며 그 생존 수단은 주로 감정이다. 생각은 감정에서 나오고 결국 감정은 생각의 축약이다. 수천에서 심지어 수백만 가지 생각이 단 하나의 감정으로 축약되기도 한다. (26~27쪽)

-- 명상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생각 끊기이기 때문에 결국 감정 내려놓기는 명상의 목적에 부합합니다. 생각을 끊어내어 고요한 침묵의 바다(공적영지)에 집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신 의식과 일치코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정 내려놓기는 신인합일의 영적 목표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다만 감정 내려놓기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고)을 계속 관찰할 수 있기에 명상의 보조도구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 척도와 의식 지도  (0) 2017.12.06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감정 내려놓기와 명상  (0) 2017.12.05
감정 버리기는 에고 버리기  (0) 2017.12.03
내려놓기에서 만나는 저항  (0) 2017.12.02
내려놓기와 의식 성장의 관계  (0) 2017.12.01
posted by 목운
2017.12.03 08:04 호킨스 방하착

우리가 줄곧 내려놓기를 해서 그만둘 정도로 모든 게 잘 굴러가면 그만두기 쉽다. 그러나 보통은 버릴 게 더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느낄지라도 그것은 잘못이다. 높은 상태와 내려놓기의 여세를 이용하라. 더 나아가라. 언제나 더 나아질 일이 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가라. 버리는 일에 탄력이 생길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계속하기는 쉽다. 높은 차원을 느낄수록 내려놓기는 더 쉬워진다. 이때가, 더 내려가서, 바닥에서라면 도전하지 않았을 무언가 (누르고 막았던 "쓰레기")를 내려놓을 절호의 기회다. 언제나 끌어올려 버려야 할 감정이 있는 법이다. 괜찮다고 느낄 때 감정은 더 교묘한 법이다. (24~25쪽)

-- 요컨대 감정 버리기는 에고 버리기고, 에고 버리기는 공관복음 가운데 3개 복음이 전하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고 요한이 전하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길입니다. 이 일에 주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이 문제다  (0) 2017.12.05
감정 내려놓기와 명상  (0) 2017.12.05
감정 버리기는 에고 버리기  (0) 2017.12.03
내려놓기에서 만나는 저항  (0) 2017.12.02
내려놓기와 의식 성장의 관계  (0) 2017.12.01
내려놓기의 효과  (0) 2017.11.29
posted by 목운
2017.12.02 04:54 호킨스 방하착

부정적 감정을 버리는 것은 에고를 해체하는 것인데 이 일은 고비마다 저항을 만나게 된다. 해결책은 그 전체 과정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그저 계속 버리는 데 있다. 저항이 있게 내버려두고 거기에 저항하지 말라...

우리를 오랜 동안 노예로 만들고 희생자로 만든 모든 프로그램을 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 프로그램들로 인해 눈이 멀어 우리의 진정한 신분을 보지 못했다. 에고는 존재 기반을 잃어버리기 싫어서 속임수를 쓰고 허풍을 떨 것이다...

상당 기간 내려놓기를 해서 무언가 변하는 것을 체험하면 우리는 생각에 대해 웃을 수 있게 된다. 생각이란 거짓이며 진리를 흐리는 미신이다... 생각이란 어항 속 금붕어와 같으며 참나는 물과 같다. 참나는 생각 사이에 있는 공간, 더 정확히는 모든 생각의 저변에 있는 고요한 앎의 장(場)이다. (Letting go, p. 22~24)

-- 우리가 내려놓기를 실천하면 저항을 만나는데 그것은 주로 이게 효과가 없다거나 잊어버리거나 방법을 모르겠다거나 하는 핑게의 형태입니다. 하지만 저항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진보의 표지라고 합니다. 명상과 함께 이 방편을 꾸준히 실천하면 삶 자체를 수행으로 만드는 것이고 의식이 끝없이 향상하여 커다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호킨스 방하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정 내려놓기와 명상  (0) 2017.12.05
감정 버리기는 에고 버리기  (0) 2017.12.03
내려놓기에서 만나는 저항  (0) 2017.12.02
내려놓기와 의식 성장의 관계  (0) 2017.12.01
내려놓기의 효과  (0) 2017.11.29
세간 삶을 벗어나기  (0) 2017.11.28
posted by 목운
2017.12.01 19:21 복성서

※다음은 현대불교뉴스 "심성론의 불유(佛儒) 회통론과 거사들(2008. 9. 23.)"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심성론에 있어 불교와 유가 사상을 결합시킨 양숙(梁肅) 거사의 ‘복성명정론(復性明靜論)’을 계승해 보다 발전시킨 사람은 이고 거사이다. 이고(772~841) 거사는 <복성서(復性書)>를 지어 유명하다. 이고 거사는 자(字)가 습지(習之)이며, 롱서(현재 甘肅省 渭源)사람이다. 거사는 학생시절인 정원(貞元) 9년(793) 9월 주부(州附)에서 공거인사(貢擧人事, 지방에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는 행사)를 시행할 때 양숙 거사와 첫 대면을 했다. 양숙 거사는 이고에 대해 ‘서로 통하는 도가 있다’고 평가해 가르침을 주지만, 아쉽게도 그해 11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나 2~3개월 짧은 기간 동안 사사는 이고 거사에게 스승인 한유보다도 더욱 깊은 영향을 줬다. 그 후 거사는 양숙 거사를 추모해 <감지기부(感知己賦)>를 지었다. 이후 정원 14년(798), 이고 거사는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올랐고, 낭주(朗州)자사, 예부랑중, 형부시랑 등의 고관을 역임했다. 태화(太和) 9년(835)에 양주(襄州)자사 및 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에 임명됐고, 그 임지인 양주에서 생애를 마쳤다. 거사는 딸만 7명 두었고, 외손(外孫)대에서 재상을 3명 배출했다. 


이고 거사의 유불회통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대표작 <복성서>이다. <복성서>는 모두 세 편으로 구성됐다. 상편은 성정(性情) 및 성인(聖人)에 대한 총론이고, 중편은 수양하여 성인(聖人)에 이르는 방법을 평론했고, 하편은 사람들에게 수양을 권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전편에 걸쳐 공맹(孔孟)의 도통(道統)을 회복할 것을 호소했고, <주역(周易)> <대학(大學)> <중용(中庸)> 등으로 주요 전거를 삼았다. 거사는 이 책에서 정(情)을 버리고 ‘성품을 회복[復性]’하는 것을 취지로 했고, ‘헤아리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弗思弗慮]’ 정은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복성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표면상으로 본다면 이 책은 유전(儒典)을 근거로 해 유가의 용어를 사용하며, 그 목적도 공맹의 도통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좀 더 깊이 사상 내부로 들어간다면 어렵지 않게 이 책의 사상 및 표현방식이 불교의 불성론(佛性論)과 상당히 접근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성서>의 사상은 선종(禪宗)의 ‘이념(離念)’ ‘무념(無念)’ 나아가 ‘무상(無相)’과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송(宋)의 석실조수(石室祖琇) 선사는 <융흥불교편년통론(隆興佛敎編年通論)> 권24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복성서>를 배우는 것은 불경의 개요를 얻는 것이다. 다만 문자를 달리 했을 뿐”이라 말했다. 이고 거사의 사상에 불교가 깊게 스며들었던 원인은 양숙 거사와의 인연뿐 아니라 다양한 선사(禪師)들과의 인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4는 거사가 낭주자사로 있을 때 약산유엄(藥山惟儼) 선사를 친견해 오도한 내용을 상세하게 전한다. 


거사가 유엄 선사를 처음 만났을 때, 선사는 경전을 보며 못 본 체하자, 거사는 “직접 대해 보니 소문에 듣기보다 못하다”며 떠나려 했다. 그때 선사는 “태수는 어찌 귀만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깁니까?”라고 반문하자 거사는 합장하며 “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선사는 손으로 위와 아래를 가리키며, “알겠습니까?”라고 묻자 거사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선사가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거사는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하나 읊었다. “몸을 단련해 마치 학의 형상과 같고, 천 그루의 소나무 아래 두 함의 경전을 두고 있네. 내가 와서 도를 물으니 아무런 말이 없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하네.” 게송을 마치고, 거사는 다시 선사에게 “어떤 것이 계정혜(三學)입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빈도(貧道)의 이 처소에는 한가한 살림살이가 없습니다”라고 답하니 거사가 헤아리지 못했다. 


선사는 “태수는 이 일을 잘 보임(保任)하십시오. 앉을 때는 산꼭대기 가장 높은 곳에 앉고, 행할 때는 바다 속 깊이 밑바닥에서 행하십시오. 침실 속의 물건은 버리지 않으면 바로 새어나옵니다”라고 설명했다. 선사가 밤에 산을 올라 경행(經行)하다가 홀연히 구름을 헤치고 나타난 달을 보며 크게 웃으니, 예양(澧陽)의 동쪽 구십 리까지 울려 퍼졌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선사에게 찾아와 물으니, 거사가 옆에 있다가 “그윽이 머물 곳을 골라 얻었으니 들에서 당신(약산유엄) 뜻에 맞으리. 평생토록 사람이 와도 맞이하고 전송하는 법이 없는데, 어느 때는 외로운 봉우리 꼭대기에서, 달 아래 구름을 헤치고 한번 크게 웃는다”라는 시를 읊었다. 


<전등록>에 보이는 이 일화로부터 약산 선사는 이미 거사의 깨달음을 인가하고 있음이 짐작된다. 거사와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당주(唐州)의 자옥(紫玉) 선사, 서당지장(西堂智藏) 선사, 아호대의(鵝湖大義) 선사 등 동시대의 여러 뛰어난 선사들과 밀접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복성서>에 보이는 ‘성품의 회복’이란 논리가 선종의 ‘명심견성(明心見性)’의 논리와 유사한 원인이 드러난다. 또한 이러한 거사의 반연은 유불회통론에 있어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양숙 거사와 다른 측면이 나타나게 했다. 


이러한 거사의 사상을 후대에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희(朱熹)는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다만 불교로부터 나온 것” “지극한 도리를 설하지만, 불교와 유사할 뿐”이라 비판했다. 그런데 이렇게 선의 깨달음을 증득하고 불교에 심취했던 이고 거사는 당시 불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다. 남북조시대부터 출현한 재회(齋會)가 당대에 와서는 점차 화려하고 성대해짐이 최고조에 달했고, 또한 이로부터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사(安史)의 난(755~763) 이후 국가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러한 재회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이에 거사는 불교의 재회를 없애자는 의미인 <거불재(去佛齋)>를 찬술해 재회의 폐단을 비판했다. 이 저술을 세밀히 분석하면, 거사의 의도는 불교 본연을 잊고 지나치게 복록을 탐하는 불교도 비판에 있지 불교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복성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성서에 대하여  (0) 2017.12.01
<하편>  (4) 2016.04.23
5절 삶과 죽음을 논함  (0) 2016.04.19
4절-3  (0) 2016.04.17
4절-2  (0) 2016.04.14
4절-1 참나와 에고의 작용과 관계를 재론함  (0) 2016.04.12
posted by 목운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