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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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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7 16:12 실체,영성,현대인

자율성

유아기에 모든 부모가 발견하듯이 두 살은 '아니야'라고 하는 발전 단계의 특성인 반항과 부정이 특징이다. 문제는 통제에 관한 것이며 가족 관계에 있어 힘의 대결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두 살의 특징은 반항적 도전이다(프로이드의 '항문기 도전'의 공격인 배변훈련기에 해당). 이 갈등은 고집, 이기심, 타인에 대한 불경 및 '신'이 되는 집요한 쾌락 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기애적 에고의 표현이다. 능란한 부모역할로써 부모에 대한 사랑이 생겨난 경우는 물론 부모의 보호를 잃어버릴지 모르는 두려움에라도 그러한 성질은 극복된다. 권위에 도전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시 본능의 만족에 저해된다고 여겨질 때 자치와 통제를 둘러싼 갈등이 사춘기에 되살아난다(예, 약물, 랩음악, 펑크록, 짧은 바지, 여성을 창녀라고 부르기 등).


권위에 대한 도전이 해결되지 않은 대가는 고교 중퇴율이 30%에서 50%까지 이르는 것(물론 그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비용과 함께)에서 드러난다. 반항 행동에는 도덕, 윤리 및 법적 행동기준을 비롯해서 모든 형태의 권위를 폄하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 결과로 종종 죄수들 문화로 귀착하는 주요 사회적 문제와 더불어 쾌락주의적 자기탐닉의 하위 문화가 생긴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소위 '반항적 인격 장애'가 되는데 그 희생자들이 '저항' 운동, '정신나간 교수들', 음모론 및 집단 폭력 등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외고집은 그 기원이 유아적임에도 미디어의 관심을 끄는 멋진 일로 치부된다.


베트남전 기간에 반문화를 이끌었던 많은 이가 그들의 행동을 후회하고 실제 그에 관한 글들을 썼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숙함에 따라 그저 전쟁을 오래 끌고 가게 했고 고통과 사고율을 높였으며 적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기애적 에고는 사춘기 반항을 '고귀하고' '이상적'이거나 '뛰어난' 것으로 보기 좋아한다. 그런 말들 자체가 자기애, 이기주의 및 허영(측정치 170)과 같은 태도에 끌린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항은 종종 억압적이고 고압적 자세와 참된 권위에서 나온 전문성을 혼동하는 데서 나온다. 역설적으로 반체제적 반권위주의적 자세가 나중에 학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강압적으로 되고 집요하게 복종을 요구한다. 언론 자유의 우수성으로 선전하는 많은 것이 실로 '외고집' (측정치 190)으로 불리는 신경증적 성격장애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현대문명은 물론 고대 문명을 형성한 위대한 혁명으로 이어진 무대와 사회 환경으로 넘쳐난다. 어떤 것은 큰 유익을 가져왔지만 다른 것은 커다란 재앙과 광범위한 죽음과 기아를 초래했다. 각 저항마다 혜택도 가져오고 비참한 희생도 가져왔으며, 악당은 물론 외견상 영웅을 배출했다. 그러한 갈등은 수세기 동안 연구와 논쟁의 주제였다. 의문거리는 언제나 그 혜택이 생명의 희생과 고통이란 비용을 들일만한 것이었는가에 있다. 세익스피어가 갑작스레 닥친 엄청난 불운을 겪거나 거기에 대항해 무기를 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잘 묘사한 것처럼 그와 똑같은 대화가 오늘날 세계의 대화 속에 넘쳐난다. 각 세대는 자기나름의 결정을 하기 마련이다.


무엇을 택할 것인가? 저항하는 자들은 욕설로 증오를 퍼뜨리는 식보다 불만과 반대를 표하는 성숙한 방법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유치한 불만자나 적대적인 자기애적 비판자일 뿐인 경우가 흔하다. 미국은 지금 그 비판자들이 주장하듯 자신의 이상을 외국에 강요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택하라'는 것이 세계적 갈등의 핵심으로서 '이슬람을 택하라'는 것에 대항하고 있다.


과거에는 그 갈등이 '신권'이나 세습 군주 대 '평등, 자유, 형제애' 간에 있던 것이다. 공산주의(지수 160)는 전체주의와 급진 사회주의를 위해 노예의 '사슬을 벗어던져라'는 구호에 호소한다. 그리고 또 문명을 지탱하는 거대한 사회적 지판이 계속해서 삐걱거리고 전쟁과 갈등을 일으킨다. 바로 분명해지듯 기초적 갈등은 언제나 진리의 수준에 대한 묘사가 서로 다르고 그것이 시사하는 도덕적 권위가 서로 다른 데 있다. 즉 의식 수준이 갈등의 해결뿐 아니라 갈등의 결정 요인이기도 하다. 윈스턴 처칠의 신세계; 영어권 사람들의 역사를 읽으면 인간 조건 자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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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16 12:49 실체,영성,현대인

진정한 권위라는 자산의 상실

오늘날의 문화에서 참된 권위의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정치색을 띤 대중적 이미지를 벗겨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힘의 크기는, 그 움직임으로 인하여 종국에는 지진과 폭발이 생기는 지각판에 비견할 수 있다. 우리는 전쟁(기록된 역사의 시간 가운데 93%를 차지함)처럼 사회적으로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이러한 재앙에 대해 권위 있는 인물들을 비난한다. 그리하여 과오는 진정한 권위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권위에도 불구하고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참된 권위 자체는 철학적 상대주의의 표적이 되고 있는데 그들은 참된 권위(진리)가 존재한다거나 그 어떤 유효성이 있다거나 하는 것을 미사여구를 써서 부인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치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절대주의를 규탄한다. 상대주의가 권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자기애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원리와 이론을 통해서 그저 자기들에게만 권위가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상대주의적 주장, 이론, 철학 및 신조들이 겉으로는 도덕적 권위를 반박하면서 자기들만 도덕적 권위를 가진 듯 주장한다. 상대주의적 포스트모던 이론은 진리가 임의적이면 자기들의 신조도 오류(예, 그들은 도덕성은 '그릇되며' 그 자체가 비도덕이라고 주장한다)라는 것을 감춘다. 그리하여 "권위를 의심하라" (측정치 180)는 간지러운 자동차 스티커가 생겨난다.


참되고 합당한 권위는 외양이나 직위, 속성 등에서 기원하는 게 아니라 본질(궁극의 실체)에서 기원하며 참된 권위는 미디어의 승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온전치 않고 진실하지 않으며 200 미만으로 측정되는 것(사춘기 반항)은 본질에 기반한(절대주의) 권위 있는 진리가 거짓된 지각(이것은 자기애적 에고에 기원함)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참된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현재 대학 교수들의 연령대이기도 한 1960년대 세대의 자기애에 호소하고 미디어의 관심을 끌수록 이익을 보는, 공공연하고 귀에 거슬리는 반미적 반체제적 태도가 인기 있다. 철학의 티를 내는 것은 에고가 뽐내기 좋아하고 자신의 태생적 한계에 맹점이 있기 때문에 철없는 에고가 미사여구에 약하다는 점을 파고든다. 상대주의가 "절대주의는 오류다"고 하면 바로 그 진술도 오류에 대한 정의상 오류다.


한계

권위는 모든 것을 다 아는 게 아니며 따라서 인간 조건과 그 진화 상태가 요동하기 때문에 과실을 피할 수는 없다. 이어서 치명적 한계로 인해 과오가 생기는 것으로 아는 과오가 생긴다. 그것들은 잘못된 정보, 계산 착오, 거짓 자료, 조건의 변화, 미지의 또는 숨겨진 요인 등으로 인한 것이다. 속임수와 잘못된 정보는 국제관계에서도 널리 퍼지는 경향이 있으며 국제 연합(측정치 190)의 끝없는 소요 가운데 공공연히 드러난다. 국내 이슈는 자연 재해와 낮은 의식 수준 및 경제적 인구적 요인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에서 일시적 현상이다.


오류나 결함에도 불구하고 참된 '위대성'은 루즈벨트, 처칠, 간디 등과 같이 힘과 인격특성 및 미덕의 복합물이라고 여겨진다(헤이워드의 위대성[2005] 참조). 이 모든 것은 성실성과 용기가 성숙하고 긴밀히 조화를 이루었음을 보여준다(측정치 460~700).

역사적으로 모든 대통령은 특별히 전시에(예, 아브라함 링컨) 치명적 공격과 극단적인 험담이나 암살에 노출되었으며 2차 대전 종전을 위해 고통스러운 결정을 했던 트루먼처럼 고뇌를 거쳐야만 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본도 미국에 원자탄을 투하하려고 계획하고 준비중이었다고 하니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행운인 셈이다(Kuroda, 2007). 이렇듯 모든 전쟁의 '도덕성'은 상황에 달린 문제이며 수십년 내지 수세기 동안 논쟁거리이기도 한데 그 동안 맥락이란 게 점차 이해되고 재평가되기 마련이다.

posted by 목운
2017.03.15 10:10 실체,영성,현대인

진리의 전도(顚倒) (2)

에고(마음)의 태생적이고 근원적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겸손의 결과인데 겸손에서 내적 한계를 고려하고 따라서 그것을 보완하는 지혜가 나온다. 부주의한 자들은 나침반 없이 항해를 하고 또는 성공적으로 길을 오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지도를 남긴 유능하고 경험 많은 안내원의 안내 없이 항해를 한다.


영적 수행에서도 등산에서처럼 실수할 위험과 기회가 있다(에베레스트 산에서의 등반으로 희생된 사람은 이미 160명을 넘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두려움이 아니라 성실과 존중 때문에 어떤 노선, 스승이나 종교적(영적) 조직이든 검증가능한 진실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 영적 진리에는 비밀이 없으며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고대의 신비'와 '비전'(값을 치루거나 다른 대가를 요구하는)에 내통하는 기이함에 끌리는 자기애적 에고의 혹하는 유혹을 회피한다. 진실한 것은 설득하거나 전도하거나 과장하거나 통제할 필요가 없다.


신뢰성, 진실 및 성실은, 그 본질을 뚜렷하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간단한 의식 측정 방법으로 즉각 드러나며 알아볼 수 있다. 영적으로 열심한 이에게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기 위해 검증되고 온전한 스승, 가르침 및 조직의 명단을 진실 대 거짓에 있는 도표와 목록에서 가져다 이곳에 이미 제공했다. 


진실과 진실 추구는 거짓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격하기에 매혹적인 듯하다. 왜냐하면 진실이 자기중심주의의 자기애적 자만심은 물론 이익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거짓에서 얻는 이득은 아주 커서 신을 부인한다든지 신성에 대한 어떠한 언급에도 반대한다든지 아니면 그대신 역설적으로 극단적인 행동에 대하여 신에게서 출처를 찾는 식으로 실로 아주 극단적인 모습을 띤다.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으로 인한 영적 과오의 심각함은 세속적 이익을 위해 점점 자기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 박사라는 유명한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 그 드라마의 관중은, 특히 그 오페라의 경우 파우스트의 영혼이 최종적 재앙과 운명을 드러냄에 따라 몸서리를 친다.


극단적인 영적 과오의 심각함 때문에 바티칸은 역사적으로 저술들에 대해 승인이나 불승인을 정함으로써 가톨릭 신도들을 위해 영적 안전판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나아가 공식적 '출판허가(imprimatur)'는 저작이 안전하고 영혼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작이 금서목록에 들어가면 그 책은 악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라면 그러한 행동을 억압적이라고 보겠지만 그 의도가 370으로 측정되는 바와 같이 진실한 것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태생이 무고할 뿐 아니라 속기 쉽고 무지한 때문에 정욕을 부추기는 일과 불경스러운 믿음에 쉽사리 이끌리는 순진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안전한 조건을 확립하려고 지침을 마련한 것이었다.


권위

참된 권위의 기반은 온전한 신뢰성에 더하여 책임있는 리더십과 진실한 정보의 관리능력 등이다. 참된 권위는 역사를 통하여 주요한 사회적 자산이자 지적 도덕적 지침으로 여겨졌으며 그 진실 수준 덕분에 그에 맞는 존중을 받는다. 참된 권위는 추상적 원칙으로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사례를 초월해 있다. 그 이상을 개인이 보여주지 못한다고 해서 그 원칙의 진실성이 부인되는 게 아니라 그저 그것을 특정 상황에 제대로 적용하기 못했을 뿐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시민적 권위가 때때로 남용되거나 실수한다고 해서 참되고 온전한 권위 같은 게 없는 것은 아니다.


직위가 가리키는 권위가 자동적으로 참된 권위를 가리키는 것을 아니며 따라서 참된 권위는 사회정치적 고정관념들이 놓인 조건에 취약하다. 물론 권위에 맞는 책임을 실행하는 데 개인들이 실패하는 일이 광범위한 현상이기는 하다. 이번 세대에 아마도 심지어 연방 정부까지도 수십년 동안 그 법칙 자체를 구현하지 못하는 데서 그런 현상은 드러나는데 그 때문에 바로 주권의 손상뿐 아니라 주요한 갈등과 난관이 생겨난다.


정치적 정의를 도외시하면 실로 참된 권위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 전문성, 경험 및 능력(예, 비행기 조종사)처럼 그 근원적 신뢰성에 있다. 그러니 외양은 본질로써 뒷받침되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이것이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하는 것은 종종 불분명하며 오직 의식측정을 적용해야만 풀린다.


역사적으로 참된 권위는 통상 원칙의 창립자, 창안자와 저자 또는 온전한 철학 체계의 설립자는 물론 위대한 과학자들이 제시한 일단의 지식을 가리켰다. 또 다른 참된 권위는 음악, 미술, 종교 및 영적 탐구의 위인들이었다. 권위의 확인은 의식 측정과 같은 객관적 수단을 통하여 체험적으로 확증되는 경우는 물론 재현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참된 권위는 그 우수성으로써 증명된다는 특징이 있다. 진정한 권위에서 존경이 나오는데 이는 인간이 지침뿐 아니라 생존을 위하여 거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거짓 권위에 잘못 의존하면 종종 광범위한 죽음, 유린 및 수백만명의 고통 등 사회적으로 중대한 결과가 초래된다(예, 모택동, 측정치 185; 마르크스 130; 스탈린주의 및 나찌 이론). 히틀러와 스탈린은 재앙적 결과를 가져온 정치권력뿐 아니라 군사적 역할을 탈취했다. 레닌(측정치 80)의 테러리즘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와하브주의(이슬람 원리주의 - 역주, 측정치 30)의 치명적 결과(예, 9/11 폭파)를 본다. 거짓을 신격화하고 부패한 지도자를 숭배하는 것보다 더 큰 과오는 아마도 인류에게 없는 것 같다. 철부지 대중이 이기적 허영과 위대함을 헷갈린다. 악성의 메시아적 나르시시즘은 증오(계급, 국적, 종교, 인종 상)나 보복에서 힘을 얻는다는 것을 주목하시라. "미국에게 죽음을"이란 노래나 미국을 '거대한 사탄'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수 20(사탄적, 악마적)으로 측정된다. 악성의 거짓 옹호자가 그에 따른 카르마상 책임과 의무를 진다는 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학생에게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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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14 13:50 실체,영성,현대인

극단주의

특히 과도하게 야만적인 잔인함과 집단적 유혈 욕망의 공공연한 과시 형태인 극단주의는 보통 거부되고 억눌려져서 프로이드가 "이드"라 부르고 칼 융이 "그림자"라 부른 무의식 영역으로 보내지는데 그것은 매우 유전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피에 굶주린 욕망은 동물집단 살상에서 드러나는데 비슷한 사례로 유명 운동선수에 의한 투견 '스포츠', 학내 살인자의 살인 잔치, 광란극, 린치를 일삼는 집단의 과격하고 광란적인 집단 만행, 만주에서 일본의 대학살, 폭도의 집단 폭행, KKK의 교수형과 고문, 무고한 이들에 대한 폭도들의 폭행, 하이티에서의 광포하고 야만적인 폭동, 칼을 휘두르며 벌인 아프리카 국가의 내전 등이 있다. 게다가 나찌의 집단수용소와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는 물론 탈리반의 참수와 게슈타포의 대학살이 있다.


프랑스 혁명은 길로틴으로 14,000명을 처형했다고 해서 치하받는다. 광신적 종교단체는 집단 자살을 하며 아이들뿐 아니라 서로 죽이기도 한다. 종말론적 승리의 이름으로, 이슬람 테러리즘과 대중 폭동이 이러한 유전적 성향을 미화하는데, 이러한 종말론적 승리에 대한 신념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며 '마디'(12대 이맘)의 재림을 촉구하기 위해 인류의 2/3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12대 이맘 '마디'는 세상을 계시록의 종말과 비슷한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다. (이상은 2007년 컬럼비아 대학에 초빙되어 강연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네타냐후, 2006]이 진술한 신념이다.) 모든 종말론은 극히 낮은 70으로 측정되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지독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사례들은 고전에서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지칭되었고 특정 환경에서 폭발할 수 있는 인간 의식 안의 어두운 저수지 같은 것인데 무구한 듯한 어린이들에게서까지 찾아볼 수 있다(예, 파리의 대왕). 오늘날 인기 있는 비디오 게임이 종종 90으로 측정되는데 그것들은 살인과 강간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성향(영화 검은 크리스마스)은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도 권위 있는 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잔혹성을 보인다고 심리 실험에서 조사되어 기록된 바 있다. 자원자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조성된 죄수-간수 실험에서는 잔혹성이 표면화되었다(Zimbardo, 2004, 2007; Milgram 2004). 


잔혹한 인종말살은 수천년간 정복을 위한 야만족 군대에 특징적이고 고유한 것이었다(예, 징기스칸, 바이킹, 훈족, 고트족). 이러한 야만적 성향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말론적 경전에 끌어들여진 것은 겨우 몇세기 안된다.


진리의 전도(顚倒) (1)

권위와 선동 그리고 세뇌의 영향에 더하여 집단적 동의에 의하여 진실 검증을 위한 인간 마음의 능력은 허물어져 거짓이 진실로 통용되어 종교적 숭배를 받기에 이른다(종교재판). 이는 세일럼 마녀재판과 같은 사건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무하마드의 가르침이 타락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데 무하마드 이반 압달-와하브(측정치 20), 사이드 쿠트(측정치 75)의 광신적 가르침과 거기에서 나온 하마스(측정치 40), 알카에다(측정치 30)와 빈라덴의 성전(聖戰)(측정치 20) 등이 그 산물이다.


국가, 문화, 종교 전반이 심지어 수십년 또는 수세기 동안 특정 조건에서 그 가르침에 정반대로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매우 심하게 작동된 경우는 신의 권위라는 명분으로 아주 야만스럽고 터무니 없는 인간과 동물의 초기 본능이 합리화되고 실행하도록 장려되고 심지어 갈채를 받는 일이다. 이리하여 (자비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집단 자살의 방법으로 무고한 자들을 죽인다.


이런 일은 집단 자살로 마감한 광신도 집단에서도 볼 수 있다(예, 존스타운, 천국의 문, 헤일밥). 이 모든 재앙은 인간 의식의 한 측면에 정치색을 띤 권위있는 사람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에서 보듯 카리스마 있는 위와 같은 모든 지도자들은 특성적으로 '악성의 나르시시즘'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진실 대 거짓 제14장 참조). 역사는 같은 일을 반복하여, 메시아를 빙자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과 가정의 수백만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신을 빙자한 권위를 계속 주장하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까지 이르렀다.


증오와 악을 신격화하는 일은(예, 빈라덴은 "우리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숭배한다"고 한다.) 10으로 측정된다(원시주의). 오늘날 세상에서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신학적으로 '사탄식 전도(顚倒)'라고 정의되어는 것이다. 이슬람에 미친 그 영향은 이븐 와라크의 권위 있는 연구 왜 나는 무슬림이 아닌가?(1995)에 학술적으로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이 책의 측정치는 410이다. 또 다른 권위 있는 저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야톨라의 '율법적 결정'에 이은 새먼 루시디가 지은 책이 있다.


진리를 '루시퍼적으로 전도'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신을 적으로 보는 자기애적 에고의 교만한 탐욕을 거쳐) 개념적 전제를 바꿈으로써 진실과 거짓을 뒤집는 데서 생긴다. 이러한 거짓된 과장은 '신격화'라 부를 수 있는바 유혹에 굴복한 것이기도 한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지도자들이 돈과 섹스에 대한 착취, 개인적 이득을 위한 추종자 통제와 조작을 통하여 그 유혹에 빠져들었다("권력은 부패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Lord Anton]).


이상 모든 것에서 보면 인간의 에고(마음, 소아)는 그 자체에 무지라는 한계와 약점 및 취약성이 있기 때문에 속기 쉽고 실수하기 쉽다는 게 자명하다. 이러한 한계는 부인이라는 유명한 심리 기제에 기인할 뿐 아니라 카르마상으로는 물론 생물학상으로도 의식 자체의 진화에 한계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세계 인구의 85%가 200 미만으로 측정됨).

posted by 목운
2017.03.13 16:36 실체,영성,현대인

실체 검증의 결여

갈등과 압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은 부인이나 회피를 통하거나 또는 역설적이게도 전혀 주의 없이 그 갈등에 관하여 한 극단이나 다른 극단으로 마구 뛰어 듦으로써 피난처를 찾는다. 그리하여 여성을 고문하고 자기 국민을 수십만씩 죽이는 테러 지도자(측정치 90)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헐리우드 배우들처럼 과장되고 어리석을 정도로 부인의 행동을 연달아 벌인다.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과 기법은 종종 고의가 아니든 고의든 세뇌에 사용되는 것과 아주 똑같은 것들인데 그것들은 사람 마음에 있는 자기 신뢰와 확신, 그리고 실체를 이해하는 능력을 파괴하도록 짜여졌다. 이어서 마음은 전제군주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복종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젊고 감수성 예민한 미국 대학생들에 대한 의도적인 세뇌작업에서나 전세계에서 이뤄지는 이슬람 테러리스트 채용이나 세뇌된 죄수들의 사례에서 발견된다. 


훼손된 실체에서 유도된 테스트로 인한 증후군은, 이미 자율성을 내주고 슬로건에 그저 순종하고 흉내내는 쉬운 길을 취하는 수많은 세계인들에게 발생하였다. 그 폐해는 이미 미국 인구의 45%에게 심각하게 발생했다. 미국의 전반적 의식이 2006년에 426에서 2007년 현재 421로 떨어진 것도 중대하게 주목할 일이다.


미국에서는 종종 미디어의 관심, 인기와 거기서 나오는 금전적 이득이 거짓된 것에 주어진다. 자기애적 에고의 허영이 '중요한 것'으로 줄을 이어 제시된다. 극단적이고 기괴하고 별난 것이, 비록 이익을 위해 성실성, 윤리 및 도덕을 내팽겨치는 것이 되더라도 명성과 재산에 이르는 쉽고 빠른 길이 되어버렸다. 무구한 인간의 무지와 순진함을 이용하는 것이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축하받고 '나쁜 여자 되기'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천박한 악이 권장되고 교활하게 조장된다.


거짓은 진실의 반대짝이 아니다. 그저 진실이 결여된 것이다. 실상 추위가 더위의 반대짝이 아니고 빛이 어둠의 반대짝이 아니듯 진실은 반대짝이 없다(추위가 열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듯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신병

미국에서든 전 세계에서든 대중의 가장 치명적인 맹점 가운데 하나는 천박한 망상이 수반될 때에도 뻔뻔하고 공공연한 정신병이나 심각한 정신장애를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 환상이 교묘히 합리화되어 미사여구와 사이비 증거로 정치색을 띠면 알아보기 더욱 어렵다. 망상적 믿음은 순전히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진실로 믿어진 구호를 통해서 전파된다. 거짓 유언비어는 또 합리화된 왜곡과 추론으로 강화된 가면을 쓴 악의 때문에 널리 퍼진다. 그 결과 정신병적이고, 천박스럽게 망상에 사로잡힌 교수들이, 학문적으로 유행하는 환상(예, 상대주의)에 빠진 이름있는 대학에서 강의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위와 같은 어리석은 일들을 '언론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구실로 변명할 수 있는 반면, 합리성이 아직 총체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사업 영역에서는 망상적 편집증 환자가 용인되지 않는다. 자금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이 "9/11은 미국이 일으켰다.'고 믿는 사람을 채용할 리 없다. 이리하여 직업 시장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기보다 여전히 그 정신이 건전하다. 실체 검증이 총체적으로 결여됨으로써 무정부주의에 동의하는 것이 '유행'일지 몰라도 정신병적 망상은 시장의 온전한 판단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정신병적 망상증을 알아보는 것은 정신치료 수련이 없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즉 상식의 문제). (모든 망상 장애는 200 미만으로 측정된다.)


메시아적 망상 장애(악성의 메시아적 나르시시즘)는 오늘날은 물론 가까운 역사에서 보는 독재자들(모두 90으로 측정됨)에게는 거의 공통적이다. 이 장애를 알지 못한 대가는 지난 세기에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람의 희생이다. 이런 증세가 있는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이 핵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90이란 측정치는 어린이에 대한 범죄자와 상습범들의 특징이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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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12 20:54 실체,영성,현대인

사회적 바탕 : 정보와 역정보

신앙, 믿음 및 신뢰는 미디어와 인터넷이 주된 무대(그 무대는 논쟁적 편견과 심한 왜곡으로 이루어져 있다)이기도 한 현대 세계에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이다(Kupelian, 2005). 세계 지도자들은 "유태인 대학살은 결코 없었다,"든가 "미국이 9/11 재앙을 일으켰다,"와 같은 공공연하고도 매우 거짓된 발언을 하고 공인들이 고의로 심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조사해 보면 대다수 외교관들과 국제 연합 회원들이 그렇듯이 많은 정치가들이 일상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공공연히 지속적으로 상습적 중죄인과 어린이 학대자 편에서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도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이 어린이 강간 남색가와 어린이를 이용한 포르노물을 편들기도 한다. 뉴욕 타임즈는 명백하게 드러내놓고 또 아주 분명하게 치우쳐 있다(그 편집진은 200 미만으로 측정됨). 헐리우드는 선동적인 부조리를 뒷받침하며 미디어에 투자하는 이들이 자기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준 모국에 대항하여 반미 증오 선동(측정치 70)을 지원한다. (자신들이 스스로가 가진 증오심의 희생자가 되면서 증오를 옹호하는 모든 이는 200 미만으로 측정되는 것을 주목하시라.) 필경 거물 반전운동가들이 전쟁으로 수십억 달러를 버는 회사 주식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어린이를 이용한 포르노물이 지방 공공도서관에서 '보란듯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언론 자유'는 거의 정신병 수준의 오류에 대한 내부교란자 구실을 하며 정형화된 얼빠진 변명거리로 악용되고 있다. 선동되고 자금줄이 든든한 일단의 거짓 노선이 오랜 동안 매일 늘어나고 있으며 혼란스럽게 체념하는 쪽으로 도피한 무감각한 대중이 거기에 수동적으로 합류하고 있다.


선동된 거짓을 고의로 공표하는 기법이 점진적이고 전문적으로 세련되었다. 한가지 전략으로는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말을 함으로써 먼저 충격을 부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대중이 그 계획에 거의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짓 계획은 세심하게 준비되어 통제력을 얻으려는 악용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하려는 미사여구다. 또 다른 계략으로는 나중에 인용되는 거짓 진술에 대해 '지겨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허수아비 때리기'도 흔한 수법이다.


오늘날 미디어의 포화는 예상되는 바대로 겨우 160으로 측정되는데 이는 미디어가 모든 진리가 그저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편견이라고 주장하는, 유행하는 철학 시스템에서 나오는 오류 투성이임을 뜻한다. 객관적 진리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므로 왜곡되고 편협한 주관적 가치판단이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하는 것이다. 이어서 종종 그런 주장들은 오직 반복에 의해서 진리라고 주장된 것을 듣는 사람이 믿게 하려는 표어(슬로건)가 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반역자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한 투사다."라는 유혹적인 말은 180으로 측정되며 교묘하게 오도하는 상대주의의 폐해이기도 하다. (요새 유명한 간첩과 체포된 반역행위자가 모두 80으로 측정되며 '자유를 위한 투사'는 200으로 측정된다. '테러리스트'는 30으로 측정된다.) 위와 같은 프로그래밍의 순수 효과는 진실 테스트를 위한 능력을 실제로 떨어뜨린다는 데 있다. 나아가 거의 모든 기초적 수준에서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는 능력 자체에 실제 손상을 가져온다. 이점도 사회 비평가와 논평자들이 이미 주목하였고 기록으로 남겼다(Bruce, 2003; Klein 2007 등).


도덕적 무정부주의에 대한 합리화는 '윤리적 상대주의'(155로 측정됨)라 하는데 여기에서는 선과 악이 대등해진다. 하지만 인식론적 술책에 의해서 이런 식으로 선과 악을 뒤바꾸는 것이 '선'으로 간주되고, 이어서 전통 윤리가 '악'이 된다. 거짓이 유행이지만 그것이 155로 측정된다는 것은, 철학적 상대주의(측정치 190, 이는 주로 운용상 발생하는 지적 오류임)가 저지르는 것보다 진리를 더 심하게 해치는 것을 뜻한다.


믿음과 신뢰의 유지

거짓된 정보를 믿고 신뢰하는 대중의 성향은, 역설적이게도 순진무구, 믿음, 신앙과 신뢰가 여전히 강력하게 근원적으로 살아서 작동하고 있으며 실로 그 어느때보다 튼튼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상 순진한 인간성이란 바로 그 바탕으로 인해서 거짓이 그토록 강한 힘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순진무구한 수백만 명의 사람이 짓밟혀지고 무시무시하게 극단적으로 부패한 행동(예를 들면 무구한 여성을 서서히 참수하는 일이 세계에 방영되는 TV[측정치 10]에서 환호받고 과시된다.)에 자원하는 열렬한 젊은이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기과시적 범법자가 가면 뒤에 숨어 있고 그 사이 옹호자들은 그 소동을 '자유를 위한 투사'나 '평화의 종교'(Spencer, 2005)라고 선전해댄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 최면을 이용해서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기독교도에게 죽음을", "유태인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것이 '진정한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인다고 위협한다.) 그러는 사이 시민은 사회적(문화적) 파괴와 선동의 선구자를 '포용하라'는 훈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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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11 16:43 실체,영성,현대인
영적 진보
영적 진리가 참된지 알아보는 길은 주관적이고 체험적이며 점진적이다. 그것은 종종 자연스런 발견, 미약한 계시, 그리고 새롭고 확대된 깨달음의 형태를 띈다. 그것은 내용물과 동일시하던 인식이 맥락과의 동일시로 바뀐 결과이기도 하다. 신적 은총을 불러들이는 순명에 이어지는 한가지 알아짐으로 확인되는 내면의 성장과 함께, 희미한 만족감이 생겨난다. 이런 것들은 획득물이나 개인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선물로 인식된다. 

영적 진보는 예견할 수도 없고, 카르마적 성향을 비롯해서 알 수 없는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영적 에고'는 구도자가 싯디라는 초자연 현상(의식지수 540과 그 이상 특히 약 570에 이르는 에너지 장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남)을 경험하기 시작할 무렵 생겨난다. 싯디는 영적(쿤달리니) 에너지 상승에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현상이기에 그 자체를 위해 추구해서는 안되며 그것을 자신의 영예로 삼아서도 안된다. 그것은 감사로이 받아야 할 영적 선물일 뿐이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으며 그저 목격할 수 있을 뿐이다.

싯디의 기적적 성격은 그것이 발생하기 시작할 때 참으로 놀랍고 인상적이며 마침내는 거의 지속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겸손하면 거기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목격하게 되는데 그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사전에 경고받지 못한 수행자에게는 함정이고 과오가 된다. 

진짜 싯디를 흉내내는 것은 성실치 못한 자아추구 조직의 이익을 위한 행상과 같다. 진짜 싯디를 흉내내는 일은 소위 인도의 '성자'와 같은 문화들에 특유한 행태다. 또 '기적을 행한다'는 주장은 광신적 교단의 교주들에게 공통된 현상인데 그렇게 그들은 세력을 확장한다. 그러나 암시와 극적인 과시를 통하여 과장된 연기를 하는 치유자가 유도한 최면의 결과 즉각 치유되는 일도 있다.

앞에 기술한 것처럼 싯디라는 기적적 현상은 수년간 계속되기도 하며 왔다 가기도 한다. 그것들은 그 어떤 인간적 의사가 없이도 일어나기 때문에 매우 놀랍고도 인상적이다. 그것은 매우 실제적이고 확인할 수 있으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또렷하기도 하다. 그것들이 '즉각적 회복'의 원인인데 거의 모든 병에 대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기록이 잘 되어 있다.
 
기적 현상은 고도화된 영적 에너지 장에 존재하는 권능이 드러나는 것처럼, 조건이 채워지면 잠재력이 현실로 되는 원칙이 작동한 결과이다. 바로 이 강력한 에너지를 전통적으로 '쿤달리니'라 부르며 이것은 인간 내면의 에너지 시스템을 통하여 흐르는 영적 에너지다. 그것은 궁극에 가서 상위 에테르체이기도 한 영적 에너지체에 힘을 주고 빛을 발하게 한다.

이 영적 에너지는 의식수준 200에서 발생해서 상승하기 시작한다. 발생 초기 혜택은 좌우 뇌의 균형과 뇌신경 전달물질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또 엔도르핀 분비를 자극해서 뇌의 정보 처리방식을 바꿀 뿐 아니라 인식체계를 바꾼다(Newberg, 2006). 그 결과 고차원 의식수준에서는 기적적 치유가 일어나는데 유명한 "기적수업(A Course in Miracles)"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사들은) 임상경험을 통하여 의식의 장에서 나오는 권능이 잠재력을 현실로 바꾸는 것을 확인한다.

영적 노력은 보이게 또 보이지 않게 많은 유익이 있는데 건강 증진, 가정 생활의 개선은 물론 사회적 역량 증대를 가져온다는 연구보고가 넘쳐난다. 나아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이 의식수준에 통계적으로 직접적 관련이 있다. 편의를 위하여 여기에 의식 수준을 초월하여에 있는 도표를 보인다. [발췌 -역주, 깨달음(700~1,000) 100, 평화(600) 100, 기쁨(570) 99, 무조건적 사랑(540) 96, 사랑(500) 89, 이성(400) 79, 수용(350) 71, 용기(200) 55, 이하 생략, 단 ( )은 의식의 로그지수, 뒤 숫자는 행복도를 나타내는 %임]

낮은 에너지 장이 부정성, 더러움 및 범죄와 관련된 것을 끌어들이는 것과 똑같이 높은 에너지 장은 삶에 긍정적이고 도움이 되는 것을 끌어들인다. 영적 노력의 긍정적 효과가 커서 때론 기적을 부르는데 싯디의 경우에서처럼 이득을 구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은 신에게 봉사하려거나 깨달음에 이르려는 지향과 바람(이 두가지는 모두 매우 강력한 촉매임)에서 나온다.

요컨대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는 외부사건과 관계없이 내면에 터를 둔 의식 수치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를 의식하는 대로 체험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 즉 세계의 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최고의 의식수준에서 보면 세계는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기에서 영적 진화를 위한 최적의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제10장 끝]


posted by 목운
2017.03.11 15:38 실체,영성,현대인

위 요건에 더하여 편의를 위하여 세계적으로 확립된 주요 가르침도 그 측정치를 제시하고자 한다(진실 대 거짓에서). [발췌- 역주, 기적수업 워크북 600, 바가바드 기타 910, 무지의 구름 705, 금강경 700, 람사판 창세기 660, 루가복음 699, 황벽선사 가르침 850, (계시록을 빼고 시편과 잠언을 넣은) 람사판 성서 880, 노자도덕경 610, 니케아 신경 895, 티베트 사자의 서 575, 우파니샤드 970,조하르 905]


영적 노력은 순진한 충동이나 전도에 의존한다기보다 책임을 지는 것으로써 시작된다. 미묘하고 볼 수 없는 장이 수행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가르침의 구절뿐 아니라 스승이나 조직의 전체 에너지 장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룩한 벗과 함께 하며" 성실하지 않은 것을 피하라는 속담 안에 지혜가 있다. 그저 표면상으로만 봐도 예수 그리스도나 붓다 및 크리슈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무신론적 무정부주의자의 사이비 신인합일 가르침으로 대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의 거짓된 가르침 때문에 말 그대로 이번 생에서만 수억의 사람이 죽음을 당했다.


체험적 검증

영적 일치와 지향에 헌신이 합쳐지면 근원적으로 변모하게 되고 삶의 체험이 점차 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일은 장의 힘에서 나오는 결과로서 저절로 발생하며 따라서 개인적 의지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일이 아니다. 영적 가치를 받아들여 체화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주된 지향을 가로막고 저해하는 상상 속의 이득이나 통제를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내적으로 미묘한 기쁨이 참된 영적 노력에 동반된다. 평화와 성취의 내적 특성이 소아의 세계에서 참나의 확장된 인식으로 변모하는 가운데 드디어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미묘한 내적 통찰이 수반된다. 또 영적 태만 및 에고의 이득에 대한 필요와 욕망이라는 고집스런 탐닉에서 오는 내면의 영적 죄책에서 해방된다.


저항

영적 노력에 대한 저항의 근원은 에고 자체의 자기애적 중핵인데 바로 이 에고는 자기의 존재, 의사결정 및 행동에 대해 은밀히 주권과 저작권을 주장한다. 이어서 자신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득이나 통제를 위한 고집과 바람이 반복적으로 계속 분출한다. 이러한 형태는 에고가 허영스럽고 탐욕스러우며 증오에 차있고 자존심이 강하며 적대적이고 시기심이 가득한 것 등등임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저 받아들일 때 줄어들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몇 겁에 걸쳐 진화적 발전을 하는 동안 학습을 통해 축적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시적 감정은 소아적 관심사가 참나의 관심사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그저 쓸모없게 되어 버려질 필요가 있기 때문에 죄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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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11 07:53 실체,영성,현대인

편의를 위하여 온전하고 합당한 영적 스승, 가르침 및 영적 조직의 특성을 아래에 확인해 둔다(진실 대 거짓에서 가져옴).


1.  보편성 : 진리는 문화, 인성이나 환경에 관계없이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참되다.

2.  포괄성 : 진리는 모든 것을 포용하며 비밀이 없고 분파적이지 않다.

3.  유용성 : 진리는 모두에게 개방적이며 배제하는 게 없다. 밝혀야 하거나 숨겨야 하거나 판매할 비밀이 없으며 마법의 공식이나 '신비'도 없다.

4.  목적의 순수성 : 얻거나 잃어버릴 게 없다.

5.  비분파성 : 진리는 한계를 두지 않는다.

6.  의견에서 독립성 : 진리는 비선형적이고 지성이나 외형의 한계에 속박당하지 않는다.

7.  치우침이 없음 : 진리는 무엇에 대한 '안티'가 아니다. 거짓과 무지는 진리의 적이 아니고 그저 진실이 없는 상태일 뿐이다. 

8.  요구조건이나 요청이 없음 : 회원자격, 기한, 규제, 맹세, 규칙이나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9.  통제하지 않음 : 영적 순수성은 개인적으로 대망을 품은 삶 또는 의복, 유행, 성생활, 경제, 가족의 형태, 삶의 양식이나 다이어트 습관에 관심 없다.

10. 강제력이나 위협이 없음 : 세뇌, 리더에 대한 아부, 훈련 예식, 교화나 사생활 침해가 없다.

11. 구속이 없음 : 규제, 법, 명령, 계약이나 서약이 없다. 

12. 자유 : 참여자는 들고 나는 자유가 있어서 설득이나 강압, 위협이나 후유증이 없다. 위계가 없고 그 대신 실무적 필요성이나 의무에 대해서는 자원 봉사로 충족한다. 

13. 평범성 : 부여받은 직함, 수식이나 장식품의 결과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의 결과로만 인정을 받는다.

14. 영감에 의존함 : 진리는 미화하기, 유혹하기와 연출을 삼가하고 피한다.

15. 유물론이 아님 : 진실은 세속적 부, 위신, 화려함이나 장엄한 외양의 필요성이 없다. 

16. 자족적임 : 진리는 이미 총체적이고 완전하며 전교하거나 지지자, 추종자나 '등재된 회원'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

17. 초연함 :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18. 자비 : 진리는 오르막을 따라 확인할 수 있다. '반대짝'이 없으며 따라서 응징하거나 반대한 '적'이 없다.

19. 의도적이지 않음 : 진리는 개입하지 않으며 제안하거나 부담을 주거나 퍼뜨려야 할 의제가 없다.

20. 비이원적임 : 모든 것은 태생적(카르마적) 성향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그 타고난 장 안에서 인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잠재성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21. 고요와 평화 : '이야기거리'나 편파가 없다. 다른 이를 바꾸거나 사회를 이용할 욕망이 없다. 상위 에너지 효과는 근본적이고 선전이나 무슨 노력에 의지하지 않는다. 중력이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신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22. 평등 : 모든 생명이 그 드러남에 대하여 외경을 가짐을 뜻하며 해로운 것을 피할 뿐 반대하는 게 아니다.

23. 한시적인 게 아님 : 생명은 영원하며 몸은 한시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생명은 죽지 않는다.

24. 증명을 넘어섬 : '입증가능성'은 선형적이며 제한적이고 지성과 마음 작용의 산물이다. 실체는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실체는 습득하는 게 아니라 그 대신 이원적 에고의 편중됨을 포길할 때 순전히 자연스럽게 주관적으로 깨달아지는 것이다.

25. 신비함 : 진리의 기원은 자연스런 광채이며 빛남이며 비추임이어서 그것은 분리된 개인의 소아, 즉 에고와 그 마음작용이 가지는 환상을 대신해서 들어서는 계시다. 

26. 형언할 수 없음 : 정의할 수 없음. 근본적인 주관성은 체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이전의 조건을 대체하는 것이다. 이 일로써 맥락이 내용을 대체하는데 일시성이 사라지고 시간을 초월한다. 실체란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거나 시간에 속하지 않거나 시간 밖에 있으며 마음의 작용으로 인한 구조물과 관계없다. 따라서 그것은 모든 명사, 형용사나 동사(타동사건 자동사건) 넘어에 있다.

27. 단순성 : 우리는 외양과 형체를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보게 된다.

28. 긍정성 : 진리는 의견이나 확률 넘어에 있다. 순전히 그 주관적 의식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하지만 의식 측정 기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29. 무위(無爲) : 진리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며 무엇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30. 초대되는 것 : 선전되거나 설득되는 것이 아니다.

31. 예측불가능함 : 궁극의 실체는 비선형이기 때문에 위치를 찾을 수 없으며 비밀 메시지, 코드, 숫자와 표석과 같이 제한된 형체로 새길 수 없으며 고대 문자, 돌, 커다란 피라미드, DNA나 낙타 콧구멍 털 같은 데 숨길 수 없다. 진리에는 비밀이 없다. 신의 실체는 편재하며 법제화나 독점을 넘는 것이다. 법률은 인간 상상력을 나타내며 신성의 변덕은 더더욱 아니다.

32. 감정과 무관함 : 감정은 지각에 기반한다. 동정심은 진리의 분별에서 온다. 

33. 비권위주의 : 따라야 할 규칙이나 지시사항이 없다.

34. 이기적이지 않음 : 스승들은 존경받지만 아첨이나 유별남을 거부한다.

35. 교육적임 : 다양한 양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 제한이 없다.

36. 자급자족적임 : 보수를 바라거나 물질주의적이지 않다.

37. 독립성 : 외부나 역사적 권위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38. 자연적임 : 유도되거나 변형된 의식 상태가 아니며 인위적 수련, 자세, 호흡이나 식이요법으로 에너지를 조작하지 않는다. (즉 형태나 외형에 의존하지 않음. 어떤 것을 불러내는 게 아님)

39. 완전성 : 착취나 이득을 구하지 않는다.

40. 비폭력 : 강압이 없고 자비로우며 위협하지 않는다.

posted by 목운
2017.03.10 08:38 실체,영성,현대인

영적 실체의 검증

대부분의 사람이 역사의 위대한 종교와 영적 스승들이 가르친 진리를 받아들일 능력이 있는 반면 오늘날 현대인은 종종 미디어와 회의주의, 세속주의 및 전통 가치의 훼손으로 인하여 다른 요구를 한다. 게다가 현대의 대학 교육에 그러한 가치를 불신하고 공격하는 공공연하고도 교묘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영성과 종교 및 심지어 전통적 도덕적 윤리적 가치에 대한, 만연되고 강력하며 공개적인 학계의 적대감이 존재한다(Kupelian, 2005). 이러한 세뇌활동은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적 철학의 신념체계(이들의근원적 거짓됨은 그 가르침의 진실 수준을 측정함으로써 알 수 있는데[160~180], 이 수치는 근본적으로 거짓임을 뜻한다.)를 반복 교육함으로써 철통 같이 강화되고 있다.


오늘날 대학의 지적 추이는 180~190으로 측정된다. 이러한 추세는 160~190 또는 그에 못 미치며 거짓된 궤변을 동정하고 변호하는 정치 이념의 지지를 더욱 받고 있다. 나아가 오늘날 대학 졸업생은 실로 지적으로 세뇌된 한계를 보이며 진실 검증, 특히 지적 성실성과 수사적 오류를 분간하는 능력에 장애를 보인다.


앞 세대의 '무지'가 주로 에고(마음) 구조 안에 내재하는 것 때문인 데 비해서 오늘날 문제는 실로 미묘한 지적 세뇌와 프로그래밍이 가해짐으로써 가중되었다. 그러한 세뇌는 짐짓 이상주의의 외피 속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반면 그것은 남보다 앞선다는 지적 자만과 기타 과대 망상증에 실제로 호소하고 있다.


널리 퍼진 현재의 유행을 타는 상대주의 사회정치 철학과 체계 모두는 200 미만으로 측정되며 그들의 매력은 타임 잡지 2006년 12월 25일자 표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자기애에 호소하고 있으며 특히'유튜브('나' 중심)' 세대에 호소하고 있다. 사회의 '에고 숭배'를 인정하는 것의 이점은 그것을 초월할 때까지는 그것이 필요하다는 데에 있다.


이상 모든 것의 결과로서,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그 어떤 스승, 가르침, 영적(종교적) 단체, 대학 직원이나 조직이든 그 진실 수준을 공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아가 성공적인 영적 노력을 위한 우선적 조건은 지적 겸손인데 그것이 있어야 탐구는 유익하게 진행될 수 있다.


미국 전체의 측정 수준은 현재 421인 반면 현대 대학 사회는 충격적이게도 190으로 측정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무정부주의에 대한 에고의 끌림으로 쾌락주의와 허무주의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마르쿠제, 촘스키 등) 위대한 장서의 철학적 지혜가 폐기된다. 그 위대한 고전의 지적 성실성은 전에는 대학 교육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아이비리그, '10대 대학'이나 심지어 노트르담 같은 예수회 대학도 '모던'에 끼고 싶어하여 200 미만의 연사와 정치색 띤 가르침(Goshgarian, 2005)을 수용하고 있다. 서양 문명의 추락은 상대주의와 상대주의가 이슬람 지상주의에 기여한 바에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추락은 '반복'이 가져오는 효과의 한 가지 사례다. 반복은 비선형 동역학 용어인데 아주 작은 자극이라도 자주 되풀이되면 큰 변화로 귀착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권능 대 완력[번역서명 '의식혁명']) 참조). 



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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