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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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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7/03/29'에 해당되는 글 2

  1. 2017.03.29 제14장(영적 노선)
  2. 2017.03.29 제13장 - 무신론, 불가지론, 불신(2)
2017.03.29 20:01 실체,영성,현대인

도입

신에게 이르는 길이 수천 가지 있다고 오랫동안 얘기되고 있다. 전통적인 길은 앞선 저술에서 기술했으며 거기에 주요한 인도 수행자와 위대한 스승들은 물론 세계의 위대한 종교에 대한 의식 측정치를 포함시켰다. 대략 기원전 1만년 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종교 및 영적 조직과 집단에 대한 측정치도 붙였다.


그 정보가 진리의 수준을 정의하고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노선에 대해서나 실용적인 가치를 가지는 검증된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구도자는 신뢰를 위해서 역사적이거나 외적인 변수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가 자명한 검증에 의한 것이어서 그 간편성, 편안함 및 확실성이 제고되었다. 의심이나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증과 상호대조가 가능한 축적된 정보의 총체에 전반적으로 부합하고 일치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의식 측정의 방법론과 그 발견은 의식 자체의 진화 산물인데 그 덕분에 진리와 그 확실성이 드러났다.


종교

영적 교육은 지적 이해, 신앙, 이성 및 논리에 기초하며 다른 연구 주제처럼 기초적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 점은 역사적으로 일정한 과정을 거쳐 신부, 목사 또는 신학박사 학위를 정식으로 받도록 하는 신학교 및 교계의 학문적 문서는 물론 종교에 의해서 제공되었다. 


그러한 연구가 신앙을 굳게 하고 복잡한 정보를 통달하게 하는 반면 그 자체로 반드시 개인적 주관적 깨달음이라는 진보한 상태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는 깨달음이라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기보다 학문적 세분화와 장벽치기와 박식함으로만 귀결되는 학계의 맥락화 과정 때문인 듯하다. 보통 철학, 신학, 존재론 및 형이상학의 엄청난 양과 복잡성을 생각할 때 그 분야를 통달하는 것은, 높은 학위를 가진 고위 성직자의 "교회 박사" (예 마이스터 에카르트) 같은 직함에서 보듯 매우 존경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위나 '많이 배운' 노선을 따르는 것에서 초래될 수 있는 한계는,

  1. 출판물 자이곤에 있는 논문에 따르면 지적 영역 내에서 세분하여 장벽 치기(신학은 440~470으로 측정됨). 
  2. '무엇무엇에 관하여' 아는 것이 '무엇무엇이 되는' 것과 동등한 것이라는 영적 에고와 환상에 이끌리게 됨. 예를 들면 애덕에 관하여 논문을 쓰는 것과 세상에서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3. 직업, 전문직 또는 제도적 직위나 기능으로 맥락화함으로써 세분하여 장벽 치기. 종교적 직책은 근원적으로 다른 이들을 교육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적 혜택은 물론 커다란 이익이 있다. 
  4. 교계내 정치와 직책이나 권력에 대한 에고 차원의 이끌림에 사로잡힘(예 교황대리, 몬시뇰, 고위 성직, 주교, 대주교, 추기경 등). 영적 진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대성당의 장보다는 수위가 되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특정 교리와 그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서 역설적으로 편재하는 실체로서의 신보다 종교 자체에 대한 숭배로 이어질 수 있는 특정 교리에 편중된 충성도 생길 수 있다(예 '종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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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9 08:18 실체,영성,현대인

무신론, 불가지론, 불신(2)

무신론이 의식 수준 190으로 측정되는 반면 200 수준의 불가지론은 좀더 고차원이고 실체에 부합하며, 지성이 그 자체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불가지론에는 궁극의 진리에 대하여 반목하는 부정적 감정 태도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회의주의보다는 높게 측정된다. 그것은 지성이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그저 겸손하게 언급한다. 적대적 태도의 한계는 지성만의 수준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지성에게 구한다는 점이다.


불가지론과 무신론은 나이 먹는 것에도 일치할 수 있으며 지혜의 노선을 따라 감정이 성숙하는 것과 함께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어서 내용물이라는 선형 차원뿐만 아니라 맥락이라는 비선형 영역에서도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데 비선형 맥락은 궁극의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인생의 많은 영역에서 선형적 지적 과정보다 계시의 메카니즘을 통해 드러나는 고차원의 인식 능력의 확장 및 확신이 사고를 대체한다.


의심과 불신은 종종 좌절, 재앙 혹은 단순한 성숙과 지혜의 출현으로 인해 삶을 재정비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의식의 커다란 도약의 전조가 된다. 이런 일은 기적적인 일을 비롯해 커다란 전환을 겪은 많은 사람들, 심지어 성인들이 주목했던 바다. 그러한 길 가운데 하나에는 재난적 환경으로 인해 초년의 종교적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이 포함되는데 그런 일은 확인가능한 진리에 대한 수년간의 추구에 이어지곤 한다. 그러한 내적 탐구는 관련된 종교 없이도 명상을 함으로써 가속된다. 그래서 불신자에게는 붓다께서 '신'에 대한 믿음 없이 8정도를 가르치셨기 때문에 불교가 종종 실용적이고 매력적이다. 


불신자에게 맞는 또 하나의 길은 양자 역학의 발견을 예견한 베다와 우파니샤드가 있다. 이들 경전은 정신 작용은 물론 지각에 의한 환상을 넘어 존재하는 원시의 근본 실체인 절대 원칙의 궁극 실체와 의식 자체의 무한한 장에 대하여 말했다. 아드바이타(비이원성)의 길은 모든 신앙체계를 배제한 근본 진리에 대한 성실한 구도의 순수한 노선이다. 필자의 이전 저작에서 이러한 것을 기술해 두었다. 비이원성이 깨달음에 이르게 함에도 베단타 연구는, 혼란스러운 신앙 체계가 될 수 있는 여러 인도 철학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회의주의자와 불신자에게 있어 의식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길은, 모든 신앙 체계를 넘어 오직 성실한 호기심과 진정성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길이자 방법론이다.

영적(종교적) 진리에 대한 마음의 (선형적) 모든 묘사는 실효성이 없으며 논쟁과 토론에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의식 자체(비선형)는 정의와 묘사를 뛰어넘으며 회의주의나 의심 또는 불신에 좌우되지 않는다.


의식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면 '의식의 빛'이 '깨달음'의 조건이기 때문에 바로 비추임의 근원에 다다른다. 그 빛에 의해서 대상과 주체는 '내재하는 신'인 참나의 깨달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 [제1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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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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