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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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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9'에 해당되는 글 2

  1. 2017.03.09 제10장 - 영적 지향
  2. 2017.03.09 제10장(체험적인 것 대 개념적인 것)
2017.03.09 13:04 실체,영성,현대인

영적 지향

영적 정보의 최초 근원은 한 가정의 문화와 출생에 고유한 종교나 영적 단체를 거쳐 온다. 그것을 받아들여 여물어지면 영적 진보는 몸바침의 결과이므로 실로 더 이상 습득할 것이 없다. 전통 종교와 그 가르침에 맞추어 살면 다른 문화와 시대에 더 적합한 듯한, 교회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것에서 나온 것에서 미묘하게 직관으로 알게 되는 영적 진리의 핵심을 취하게 된다.


전통 종교는 그 한계로 추정되는 것이 무엇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분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혹이 생긴다. 그들에게는 전통적 가르침이 충분하지 않고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이 점은 이성과 과학 그리고 지성으로 인해 의심을 잠재울 수 없는(예 스콥스 재판의 딜레마) 오늘날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그러하다. 나아가 현대인은 스콥스 재판의 양면을 거부하면서도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기 위한 필요조건으로는 지성에 기인하는 논리와 이성뿐 아니라 신앙과 전통 종교 및 과학적 실체를 통합하는 일이다.


공식 종교를 어린이 때와 인생 초기에 받아들이는 일은 살면서 흔히 체험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현대 사회에서 성인이 되어 가정 생활의 압박과 시간의 쫓김 때문에 그것을 등한히 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간단히 되돌아 가고자 하더라도 답을 찾아야 하는 의문과 의심이 생긴다. 때가 되고 나이를 먹음에 따라 죽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고 종교적-영적 가르침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볼 필요성이 생긴다. 그 근본적인 실체를 분별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진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중병이나 사망 또는 재앙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심각한 인생사로 인해서 그 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큰 재앙에서 살아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렬히 기도했으며(실제 99%임)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신에게 완전히 맡긴 후 깊은 평화 상태에 들어갔다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것이 토네이도의 중심으로 높이 날아올라간 사람들의 큰 특징이라는 점은 놀랍다. 그들은 시간을 벗어나 깊은 고요와 평화 상태에 있었으며 토네이도가 그치고 마음이 평상 상태가 되었을 때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러한 체험들은 "인간의 재앙은 신에게는 기회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날씨 전문 채널을 보면 저녁마다 재앙에서 살아돌아온 이들의 자연스러운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개인이나 집단적 재앙의 결과 신적 실체를 발견하는 일을, 전통적으로 회의론자는 그 동기가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일 뿐이라는 추정을 근거로 '도피적 신앙'이라고 조롱하였다. 실상 이러한 발견은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만 체험할 수 있다. 두려움이야말로 신의 현존을 알아채는 데 장애가 된다. 두려움을 버릴 때만이 저항하는 에고가 깊이 승복함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평화가 드러난다. 그것을 말로 할 수 없기에 그 깊이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체험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순수한 효과는 변형력이 있으며 삶을 바꾼다. 그리고 매우 깊고 강한 체험으로 변화를 겪은 사람은 그후 오랜 기간 빛의 드러남을 체험한다.

이러한 신의 현존 체험은 두려움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막혔던 내어맡김에서 오는 것이다. 재앙의 중심에서 느끼는 무한한 평화의 상태는 600으로 측정되며, 삶을 변형시키고 그로 인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영영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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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09 08:05 실체,영성,현대인

'안다'는 말에는 '들었다', '배웠다', '추정된다'거나 '익숙하다'는 것처럼 다양한 수준이 있다. 또 '공식적으로 연구했다'거나 '어떤 주제에 정통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앎의 수준은 잠정적, 추정적, 가설적이거나 추측되는 확률 등으로 가장 잘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확신의 정도에도 확고한 믿음, 불가피함, 믿을만함 등의 수준 차이가 있다. 각 수준은 체험적 정보를 지적 정신 구조물과 대조해서 파악되는 확실성이나 신뢰성의 정도를 가리킨다.


'무엇무엇에 관하여 안다'는 것은 정보 자체는 익숙하지만 여전히 그 실체와 진실성은 체험으로 확인되어야 하는 상태다. 확실성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진짜 안다는 것은 '그것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대상과 아는 자가 하나가 된다. '무엇무엇에 관하여' 안다는 것은 마음의 일이며 체험으로 안다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푸딩을 증명하는 방법은 먹어보는 것이다.").


선형적이고 개념적으로 익숙한 삶의 차원에서는 확인하는 일이 비교적 쉽고 실천적인 문제다. 반면 영적인 일에서는 그 전체 과정이 그저 생각, 감정이나 마음으로 짜보는 것이 아닌 오감의 양상을 포함하는, 다르고 미묘한 특성을 말한다. 영적 실체의 확인에는 비선형 실체를 참으로 아는 수단인 의식의 다른 자질과 능력이 개발되어야 한다.


누가 아는 자인가?

에고(소아)가 첫째이고 행동뿐 아니라 의도의 유일한 원천이며 따라서 실체를 판단하는 자라고 보기 때문에 마음은 자신이 진리를 찾는 진짜 '나'라고 순진하게 간주한다. 여기에서 목표의 추정은 물론 동기가 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알고자 하는 동기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이득 욕구일 수 있으나 영적 동기로는 여러 가르침과 노선과 종교의 근본적 진실이 얼마나 확실한지 확인하려는 내적 필요성이 생겨난다. 의미와 진실 및 정신적인 것(영성)에 대한 욕구에는 뇌 생리와 관련한 생물학적 뿌리가 있다(Newberg, 2006).


전통적으로 영적 학습에 기꺼운 마음이 나는 것을 '무르익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진지한 의도에 성숙됨, 의식의 점진적 진화 및 체험적 학습에 대한 욕망의 가동이 더해진 운이 좋은 조합을 가리킨다. 시작은 미미한 호기심으로 했을지라도 영적 학습의 중요성과 그 장기적 결과가 의미하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점차 깊어짐으로써 흥미가 더해진다. 열정이 개발되고 드디어는 몰입하면서 영적 목표와 가치가 점점 세속적 에고의 소소한 목표를 대체하게 된다. 영적 정보의 이용으로 내적 경험과 지혜가 점차 진보하는데 그로써 영적 추구의 동기는 더 커진다. 영적 전제가 점점 체험적으로 생생해지고 '무엇무엇에 관하여 알던 것'이 체험으로 변모하는 덕에 진짜 아는 것으로 바뀌어 확신이 생긴다.


그 진보 상황은 종종 직관과 내적 안내로 치부되는 깨달음의 펼쳐짐과 자동적인 계시로 흔히 묘사된다. 영적 안내가 체험적 실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다. 수행이 진척됨에 따라 소아는 점차 해체되어 참나로 통합되는데 참나에는 에고(마음)가 하는 학습 능력과는 다른 그것만의 능력이 있다.


주권자

에고는 자기애적 중핵인데 스스로가 경험적 실체의 근원이라 생각하고 인정을 구하지만 영적인 길을 밟음으로써 점점 겸손해져서 결국에는 내면에서 감사의 정이 일어난다. 영적인 지향으로 인해 참나는 점점 지배력이 커지며 소아는 더욱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고집을 포기하게 된다. 마땅히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여전히 모른다고 하는 쪽으로 중점이 바뀐다. 이어서 속에서 인내력이 커지고 저항을 뛰어넘으려는 결단력이 생긴다. 성공에 따라 영적 과정 자체에 대한 능력과 믿음 그리고 확신이 커진다. 소아는 약해져서 점점 사라지고 자기가 주권자라고 하는 환상을 포기함으로써 '상위 권능'의 '임재'가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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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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