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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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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에 해당되는 글 3

  1. 2017.03.06 제8장 - 지혜 대 대중성
  2. 2017.03.06 제8장 - 사회적 프로그램 벗어나기
  3. 2017.03.06 제8장 - 도입(3)
2017.03.06 12:54 실체,영성,현대인

지혜 대 대중성

정부란 정치 시스템과 연관된 이념의 표현이다. 그런데 정치 시스템은 극단적으로 야만스럽고 억압적이며 전제적인 정권과 군주제에서부터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자비로운 통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아래는 진실 대 거짓에서 발췌한 것임). [발췌 - 역주, 과두제 450, 공화제-민주제 410, 사회주의 305, 군주제 200, 신정 175, 독재 135, 파시즘 125, 무정부주의 100]


가장 유익한 정부는 고대 중국에서 수세기 동안 평화와 번영을 책임진 것처럼 자비로운 통치자에게서 나온다. 고대 중국의 경우 사회적 협의와 협동이 참된 지혜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것이다. 과두적 자문단에 의한 지도력도 수세기 동안 미국 인디언과 여타 부족이 실천한 것 같은 검증된 지혜에 기반한 것이다. 이로쿼이족 국가는 민주주의의 모델로 여겨졌고 미국 정부 구조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대통령제 내각은 과두제 자문단과 유사하다(현재 미국 정부 내각은 455로 측정된다).


앞서 본 것처럼 인기에 영합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혜에서 나오는 견고한 열매의 가치는 자립적이고 그 결과로 미국은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박애적인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미국 시민 개개인, 미국 기업 사회, 정부 및 거대 재단(버핏, 카네기, 게이츠, 포드, 록펠러 등의 재단은 국제 연합 회원국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기부를 한다) 등의 관대함에 힘입은 것이다.


미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2007년 11월 현재) 421로 측정된다. 이에 비해 인기에 영합하는(예 할리우드) 비판자들은 전체적으로 190으로 측정된다. (아주 최근의 선댄스 영화제는 165로 측정된다.) 나아가 인기 영합주의가 자기애에 호소하는 반면 전에 지적했듯이 190으로 측정되는 외과의, 회계사, 변호사나 심지어 버스 운전사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의 의식 수준이 421인 반면 과두제 국가인 싱가포르는 440으로 측정되며 범죄가 거의 없다는 점은 흥미롭다.


지혜에 관한 기초적 원칙을 적용하는 데는 자기수양, 성실성, 근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요구되며 때로는 장기적 목적을 위해 즉각적 만족을 미루는 것을 의미하는 자기 희생('프로테스탄트 윤리')이 요구된다.


가장 파괴적인 정부 지도자는 그들 국가에 대한 영향이 약탈적이었던 독재자라는 특징이 있다. 이런 인기는 집단 히스테리와 우상화로 인한 가치 부풀리기를 반영한다. 나아가 모택동의 집단 정권은 175로 측정되며 3천만 명의 농부가 굶어 죽은 것으로 귀결되었다. 오늘날의 중국은 385로 상승하였으며 기묘하게도 실용주의적 기업원칙(이는 역설적이게도 샘 월튼이 예시적으로 보여준 바임)의 유익함을 대변하고 있다. 나아가 성공의 길은 시기하는 것보다 모방하는 데 있다는 것을 오래된 경구가 입증하고 있다.


문화적 환상에 대한 대책

서구 문명을 연구해보면 그 전반적 의식 수준이 현재 베네딕트 교종이 간단하게 진술한 이유(상대주의와 이슬람 공격, '문화적 지하드' ; Burton & Stewart, 2007) 때문에 추락하고 있다. 그 추락은 미디어, 학계, 정치적인 행동(이것들은 200미만으로 측정되는 곳에서 과도하게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을 거친 사회적, 지적 영향의 결과다. 그 결과로는 자기애가 점차적으로 지배력을 가지는 것인데 자기애는 '점진주의', '언론 자유'나 인권과 자기 중심주의에 끌리는 것 등으로 인해 커진다. 나아가 정규 교육이 더 이상 뻔뻔한 불충과 역겨운 거짓에 대해 안전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실용적인 대책으로는

  1. 영적으로 진리를 좇는 것(이로써 뇌화학이 긍정적으로 바뀜)

  2. 서양의 위대한 저술에 친숙해짐으로써 지적으로 세련되기 

  3. 의식 지도를 깨닫기

  4. 검증된 영적 가르침과 분별의 원칙을 따르고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의식 수준을 높일      것 등이다.


지혜의 한계와 튼튼한 사회적 진리

완덕과 집단지성은 인간의 행복과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지(全知)함에 이르게 하거나 실수와 결함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전반적으로 진화의 도정에 있고 지상 삶이 천상 왕국인 것은 아니다. 지상에서 인간 삶의 근본 가치는 선택을 통해서 자유의지를 행사함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할 최대한의 기회라는 점에 있다. 그래서 인간 삶은 부정적 업습을 초월하고 선업을 쌓기 위한 최고의 기회이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면 단죄보다는 인내와 용서, 자비가 용인된다. 인간의 진보는 진화의 도상에 있으며 따라서 실수와 과오는 불가피하다. 진짜 유일한 비극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로와지지 않고 나이만 먹는 것이다. [제8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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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06 09:08 실체,영성,현대인

사회적 프로그램 벗어나기

사회의 프로그램에 대항하는 안전책으로는 (1) 감정적으로 초연하기인데 모든 정보를 잠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2) 일상적인 마음의 작용으로는 본질과 지각을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3) 늑대가 종종 양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등이다. 이렇게 믿음을 유예하는 것은 "세상을 가운처럼 걸친다."는 기초적인 경구를 실제 적용하는 것이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은 주의력을 기울이는 한가지 방식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생활에서 바로 반응하고 기능하는 것이다.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고자 영적으로 결심한 많은 사람들이 피정을 가며 어떤 사람은 금욕을 하고 종교를 가진다. 이 점에 관해 지적하자면 진정한 금욕은 실은 내적 태도의 변화와 수행이며 그것을 통해 포기해야 할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소아가 매혹당했던 것들(그것들은 자기 자신의 투사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이다. 전통적으로 안식일은 묵상을 하고 일상 활동에서 떨어져 있는 날이었는데 그로써 오랜 기간의 영적 생활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세상사와 사업 같은 금전적 관심에서 벗어나 기도나 예배를 하는 것이다.


세상사에 대해 어느 정도로 어떤 식으로 관여할까 하는 것은 헌신의 수준뿐 아니라 그 사람의 전반적인 의식수준과 영적 지향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세상은 영적 성장과 분발에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로써 우리는 영적 공덕을 쌓고 전에 저질렀던 과오와 업장을 해소코자 한다.


전통적인 노선은 인도주의적 노력과 사심없는 봉사(카르마 요가)를 통한 것이었다. 커다란 재앙으로 인하여 종종 이러한 내면의 영적 각성이 크게 분출하였고 그러한 인식에서 동정심과 이타심이 사회 모든 차원과 심지어 정부 차원에서 진실되게 표현되었다. 이어서 표면적으로는 냉소주의나 유물주의 또는 감각주의의 모습을 하더라도 거기엔 여전히 살아있고 힘찬 인간적 마음이 존재한다.


모든 비판과 부정에도 불구하고 앞에 거론했듯이 미국은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관대한 나라이며 인도주의적 사랑에서 나오는 원조를 다른 어떤 나라보다 수백 배만큼 더 많이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미국 전체의 89% 가구) 개인과 인도주의적 기구에 더하여 비영리 기구, 교회 등을 통한 것이다(박애주의 연구, 2006). 미국 사회의 이러한 독특한 특성은 오래전인 1835년 알렉시스 토크빌이 그의 유명한 책,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주목한 바도 있다. 또 미국이 2차 대전 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 전체를 재건한 것과 오늘날 국제연합 전체 비용의 27%를 부담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상에 비하여 미국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적대하는 나라들은 그들의 엄청난 석유 이익과 축적된 자산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가난한 자나 궁핍한 지역에 줄곧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고 있다. 다행하게도 관대함과 자비, 그리고 이타심이 '영적'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데 그랬다면 추정컨대 급진적 세속주의자들에게 공격받았을 것이다. 저들이라면 인도주의적 조치로써 연방 정부가 불법적으로 종교적-영적 관행을 지원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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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06 07:07 실체,영성,현대인

그런 점에서 인터넷 정보의 50%(블로그 사이트의 50%)가 200 미만으로 측정되는 반면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 465로 측정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진실을 찾으려는 성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된다. 브리태니카에서 오류의 확률은 전체적으로 겨우 약 5%에 불과하다. 브리태니카가 엄격한 조건을 거쳐 오랜 동안 제작된 점을 볼 때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미디어에 거짓된 것들이 들어 있다는 것은 "공정하고 균형잡힌"이란 혹하는 구호로 만들어진 환상의 소치다. 물론 이것이 뜻하는 것은 상대주의를 통해서 거짓이 질실과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즉 액면 그대로 추정하는 아주 터무니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우리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관점을 지구가 둥글다는 관점에 대하여 공정하고 균형적으로 긍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어떤 질문에든 두가지 측면이 있다."(이것은 거짓으로 측정되며 돈을 훔쳐 자기집 지하에 깡통 속에 숨겨두고 현행범으로 잡힌 공무원이 비디오에서 실제로 했던 말임)와 같은 거짓 구호에 기반하여 더욱 갈고 다듬어진다.


그러니 진실을 분간하려는 노력에서 사회적 인증은 거의 가치가 없다. 기초적 종교 텍스트조차 많은 구절의 진실도에 극히 큰 차이가 있어서 어떤 것은 70으로 측정된다(진실 대 거짓, 제16장 참조).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진실은 그 어떤 검증 척도보다는 기름값에 더 의존한다고들 말하고 있다는 것은 냉소적 사실이다. 툭하면 소송을 하는 환경주의로 인해서 새 유정을 파거나 새 정유공장을 짓지 못하는 미국에서 석유 채굴을 고려하는 것만으로 이념간의 격렬한 투쟁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매우 시끄럽게 미국을 혐오하는 다른 나라에 엄청난 돈을 내보내야 한다. 권력 이동으로 테러리스트들이 더욱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되어 이슬람 지상주의와 서구 전통 가치 간에 문명의 충돌이라는 전반적 긴장이 커진다.


문화적 추세나 신앙체계가 진실한지 하는 것은 실로 내용 자체뿐 아니라 지향과 맥락 등 다양한 요인에 달려 있다. 이것은 거짓을 실행하고 역설적으로 돕기 위해 종종 진실이 왜곡되고 이용되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희귀한 장치에 의해서 검증가능한 사실이 정확히 그 반대되는 사실을 지지하는 증거로 보이도록 재해석되어 그것이 나아가 근거없는 비난에 (예,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 사용된다. 악의는 종종 무구함을 가장한다.


은밀한 목적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완전한 정직성에는 맥락과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 이것이 상황윤리의 기초인데 상황윤리는 어떤 행동에 영향을 주는 환경과 중요하게는 의도를 포함해서 그 행동이 옳거나 그른 것으로 판단될지 여부와 얼마나 맥락에 의존하는지 등을 감안한다. 이것은 형사 재판정에서 동기를 확인할 때와 연방법이 전시에 시민을 보호할 때 증거를 적용하는 일에서 매일 보는 것이다.


설혹 공통의 믿음이 그럴듯해도 그것이 진리임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나중에 지적하겠지만 미디어는 이런 왔다 갔다 하는 조작으로 정치색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오늘날 미디어 공격의 위협이, 잘 짜여진 악의적인 왜곡으로 이루어진 '블로그' 공격을 통해서 협박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인터넷을 통한 선전과 함께 "언론 자유"의 기치 아래 '증오' 웹사이트의 악의가 설 자리를 얻고 서구 문명의 몰락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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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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