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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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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에 해당되는 글 3

  1. 2017.03.04 제7장 - 요약
  2. 2017.03.04 제7장 - 실체와 의미
  3. 2017.03.04 제7장 - 영적인 것은 '실재'인가?
2017.03.04 17:30 실체,영성,현대인

요약

결론적으로, '실재'로 생각되는 것은 주어진 맥락 안에서 내용물을 여러 차원에서 처리한 결과인 주관적이고 추정에 입각한 결론인데 주어진 맥락이란 또한 의식 수준에 의존하는 것이다. 의식 수준은 뇌 기능의 능력과 형태와 영적 에너지(그 에너지 안에서는 의도가 지배적 역할을 한다)의 존부와 상관관계가 있다. 교만하고 자기만 알면 진리(실체)를 깨닫는 능력이 제약받는 반면 겸손하고 온전한 진리를 존중하면 실수가 줄고 본질과 표피를 구분하는 능력이 커진다. 의미, 시사점, 진리 및 실체를 조사하는 데는 진리의 추상적 수준을 분간하고 쉽사리 오류로 이끄는 수준을 뒤섞지 않는 일이 포함된다.


이상의 과정이 복잡한 때문에 철학, 신학, 존재론 및 형이상학과 해석학 같은 철학의 분과에 바쳐진 엄청나게 많은 문헌이 수세기 동안 발표되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오랜 세기 동안 대다수 인류는 한없이 애매한 난제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권위에 의존했다. 현대 사회에서 그 질문은 "참된 도덕적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의식 진화의 결과에 상응하는 진리의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랜 동안 계속된 많은 난제들은, 온도계나 기압계 또는 고도계처럼 인적 요소가 배제된 절대성을 가리키는 척도와 같은 공통의 준거점을 기준으로 측정된 의식(진실) 수준에 의하여 풀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측정 수준은 본질의 실체가 어느 수준인지 측정한 결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와 상대주의를 직접 반박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감지된 것과 언어로 이름지어진 것만이 실체라고 전제한다. 그러한 속임수에 가까운 억측으로 이성을 통한 실체 이해는 점차 희미해져서 200 미만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철학적 왜곡과 오류에서 실체를 분별해내는 것이 그저 지적이고 정치색을 띤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생존 자체를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수백만의 사람이 선전된 오류와 진실을 분간하지 못해서 수세기 동안 죽어나갔고 오늘날 세계에서 날마다 같은 일이 벌어진다. 원자핵 시대에 무장단체의 거짓을 확인하지 못하면 수천만의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악의적인 메시아적 자기애(측정치 30)는 상대주의적 궤변과 미사여구 때문에 무질서를 알지 못해서 잠재적 재앙의 주된 원천이 되고 있다(예 2차대전의 네빌 챔벌린, 진실 대 거짓 제15장 참조). 거짓이나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퇴행 추세에 대해 '관용적인' 것이 오늘날 정치적으로 유행인 반면 그 대가는 진짜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죽은 상대주의자가 되기보다 살아 있는 사실주의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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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04 11:16 실체,영성,현대인

실체와 의미

시사점과 의미는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 예를 사용하기 때문에 명확해진다. 영적 진리와 실체는 비선형적 맥락의 결과인데 그것은 형체가 있는 선형적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문제를 던진다.


의미는 마치 예술이 언어적 한계를 넘는 표현 형태인 것처럼 그 영향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입증 가능하지' 않다. 이어서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실재'가 아닐지 모르지만 표현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으로는 아주 강력한 '실재'일 수 있다. 


문자적 진실과 추상적 진실 간의 식별능력은, 미묘한 것이며 더 높은 의식 수준으로 진화한 결과로 인한 능력인데 종종 세련도라고도 한다. 우화는 시적 파격인데 맥락적 채색을 드러내는 상징적 영상과 관념을 사용하여 시사점과 의미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용이란 실제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그 상징은 하나의 원형으로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징과 그 추상적 시사점이나 의미를 분간하지 못하면 우리는 '융통성 없다'거나 '우습다'거나 '시시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온전한 이해력이 부족함을 뜻한다. 진리에 대하여 문자 그대로인 것과 추상적 수준 간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예, 법 정신과 법 조문의 차이)은 많은 경우 종교적 토론뿐 아니라 정치적, 법적 토론에서 기본적 수법이다. 그래서 논쟁과 갈등의 기반은 종종 편협하고 잘못된 해석으로 된 자기만의 구조물(오류)이다. 이것은 종종 의도적이어서 사실상 관계없는 세목을 중요한 것으로 보는 지나친 과장으로 귀착한다.


의미에 대한 연구, 즉 '해석학'은 정의와 맥락의 확인 결과인 추상적 사고 수준의 분류에서 나오는 미묘한 것, 참고사항과 반영 등을 보여준다. 모든 인간이 그 신적 근원으로 인해서 동등하게 창조되었다 하는 것은 고차원의 추상적 진리이지만 말로 할 수 있거나 과학적으로 입증가능하지 않다. 재능, 육체적 조건, 출생 환경의 빈부 등에서 극히 광범위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가 '동등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인권이 인간 창조의 신적 기원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태생적이며 결과적으로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그저 세속적 정의대로 우연의 산물이라면 모든 권리는 임의적이고 따라서 덧없는 것이고 침해받을 수 있으며 정치적 법적 협상의 결과일 뿐이다.


'실재한다'는 것은 한 명제가 실제적이고 존재하며 볼 수 있는 것이고 시공상에서 측정할 수 있는 것이며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에 관련됨을 의미한다. 또 특정한 존재 상태와 '사실'로 존재하는 것에 관한 판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실재성(참됨)'이란 감각에서 나온 정보와 묘사로 확인되는 주관적 진술이다. 소통수단으로서 사실에 관한 실체를 거론하는 것은 타인들이 확인해서 합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순수하게 개인적 실체에는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또한 실체성의 정도는 신념과 지속성을 반영하는데 하지만 그것들은 또 해석이나 의심 또는 편견에 영향받는다.


실체에 관한 모든 추정은 다시 높은 차원에서는 개인적 한계에 직면한다. 즉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 나오는 프로타고라스를 인용하면 "모든 사건은 나에게는 나에게 보이는 대로 진실이고 당신에게는 당신에게 보이는 대로 진실이다"처럼 된다. 그러니 실체에 대한 진술은 개인적 증언이다. 그러나 이상의 주장은 그 본질보다 외양(지각)에 준거함으로써 더욱 제한적이다. 그러니 의견이 비록 주관적이지만 본질 자체는, 관찰자가 그런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더라도 의견에 영향받는 게 아니다. 따라서 궁극의 본질인 진리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은 지각과 관찰 및 해석에서 오는 잠재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까지 발견된 유일한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실체란 설명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정체가 있는 것이다.


꿈, 상상, 영상, 기억 등과 같이 다른 사람이 체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순전히 주관적인 실체들이 있다. 자료를 확인할 수 있을 때라도 그 의미, 시사점, 가치나 중요성은 전반적 맥락에 덧붙여진다.


의식 연구의 시사점은 예를 들어 미국에서 거의 55%의 사람은 진짜 '실재'를 분간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증거로는 거의 50%의 범죄 혐의자에 대한 신분 확인이 사진이나 혐의자 명단 등에서 잘못 확인되고 있는 재판정 현실이다. 즉 "예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내가 실제로 봤습니다."는 것과 같은 한 마디 말이 50%는 오류라는 것이다(인터넷 상 정보의 거의 50%가 200 미만으로 측정된다는 점도 주목할 것).


자료들은 인간 마음에 의해서 광범위하게 처리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축소하고' 다른 사람들은 '과장하여' 중요성을 과장하거나 시사점을 내던짐으로써 실체 조사 능력에 영향에 준다. 환상에 빠진 마음에는, 실제의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고 부인되는 동안에도 모든 종류의 믿음이 '실재'가 된다. 그리하여 자기애적 지향(예, 옳음 대 그름)에 맞추려는 저변의 지향 때문에 허구도 '실재'가 된다.


그리하여 성숙한 마음은 오류의 가능성을 알기 때문에 겸손의 가치를 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고전적 어구에서처럼 실체에 관한 모든 다른 진술들은 잠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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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04 06:20 실체,영성,현대인
영적인 것은 '실재'인가?

양자 역학의 출현 때까지는 물질 우주의 뉴턴식 묘사가 완벽하고 최종적인 것으로 전제되었다. 아원자 물리학, 비선형 동력학, 양자 이론과 기타 과학상 진전이 이뤄짐으로써 이전의 전제는 재검토되게 되었다. 지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과학적 자료의 기본적 실체에 대해서는 좀처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적 실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것은 영적 실체가 비물질적 패러다임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영적 실체는 내용보다는 맥락과 관계 있기 때문에 구체적이거나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선형적이거나 적절히 묘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념상 맥락과 관계 있으며 비선형적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종교적이며, 천상적이고 원시적이며, 영원하고 전능하며, 전지하고 어디에나 있으며, 신적인 것으로 묘사된다(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을 지은 제임스에 따름). 또 천상적 영역과 신성뿐 아니라 미지의 카르마적 성향에 속하는 것이다.


비선형적인 위대한 궁극의 실체는, 모두가 체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궁극의 실체를 긍정하는 위대한 화신, 성인, 현자 및 영적 천재들에 의해서 수천년에 걸쳐 묘사되었다. 이러한 실체는 의식 수준 200에서 발생하여 더욱 강력한 주관적 상태인 500대로 진보하며 깨달음 수준인 600에서 1,000까지 상승한다.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영적 실체를 주관적이고 체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영적 과정에 대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가르쳤다. 이러한 실체는 의식 측정의 임상적 방법으로 입증할 수 있는데 그 방법은 입증과 조사 분야에서 새로운 차원을 여는 것이다.


영적 실체 대 영적 환상

역사적으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영적 영역에는 허구와 공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은 물론 매우 많은 잘못된 정보가 담겨 있다. 다음 도표는 이것을 보여주는데 모두 200 미만의 거짓에 해당한다. [도표 발췌 - 역주, 외계인 납치, 종말 예언, (신약의) 계시록, 채널링, 미스터리 서클, 다빈치 코드, 유다 복음, 뉴에이지, 라엘리언, 하위 종으로의 환생, 투린의 수의, 외계인의 UFO]


역사적 분석

'영적'이라고 하는 영역은, 거짓된 영적 공상, 허구, 신화 및 잘못된 해석에 대비하여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확인 가능한 높은 수준의 진리에서 나온 범위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분포에 걸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화, 우화, 이야기, 비유와 전설은 진리의 추상적 개념을 단순한 형태로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교육 기능을 위한 것이다. 그와 필적하여 유머, 시와 예술은 추상적 원칙을 밝히기 위해 모순과 함께 비슷한 은유적 소통 방식을 사용한다.


구약처럼 현존하는 종교 텍스트는 그런 식으로 문자대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문화적으로 민속에 속하는 이야기와 신화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슴을 데리고 지붕위를 날아서 굴뚝으로 내려가지는 않는 산타크로스에 비교할 만한 것으로 설혹 아이들에게라도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정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스콥스 재판에서 클레어런스 대로는 성서에 있는 비유적 이야기를, 문자와 법 정신 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공격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격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종교적 표현의 자유 대 종교 강요에 관해 존재하는 오늘날의 정치적 논쟁의 특징이기도 하다.


앞서 인용한 대로 미국 헌법과 권리장전은 정부가 종교를 강요하는 것(정교 일치)으로부터의 자유를 확립했지만 동시에 종교적 표현의 자유(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촛대)는 사법부를 비롯해서 확고한 세속주의자들이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사소한 차이이다. '사법부로서 입법자 구실을 하려는 이'들이 간과하는 한가지 사실은 50개주 모두가 헌법에 인간 존재에 대한 궁극의 근원으로서 신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인데(G. Williams, 2007) 이것은 '자연법'을 일률적으로 존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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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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