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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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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 11:40 실체,영성,현대인

겸손, 학습능력

겸손과 개방성은 종교적(영적) 진리를 내면화하는 일에 잠재해 있다. 겸손은 특별히 위대한 시기에 걸쳐 집단적 동의와 합의로써 더욱 뒷받침받고 있다. 참된 권위는 공식으로 인정되고 진실성이 검증되었을 뿐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신적 실체는 매우 광대한 시간에 걸쳐 널리 산재하는 문명들에 근원적이고 내재적이다. 전능하고 전지하며 편재하는 신성의 실체는 널리 퍼져 있는 부족 문화에도 고유할 뿐 아니라 모든 종교적 영적 시스템의 특성이 되고 있다.


참된 권위는 의식 조사로 확인된 본질을 반영한다. 유효한 권위는 도움을 주고 보호해주며 힘을 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리는 진실한 권위에 내재적이며 따라서 존중받을 만하고 동의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세계에서 권위로 인지되는 것은 대중의 의견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종종 그 가르침이 본질적으로 오류인 사이비 권위를 권위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 호평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200 미만에 훨씬 못 미치는 영적(종교적)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하여 인기나 과장은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 쓸모 없다.


마음으로 하여금 배울 자세가 되도록 하는 합리적 겸손이 학습에 기초적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입증가능한 참 지식을 흡수하고 내면화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 성공의 열쇠는 참된 권위에 대해 경쟁적 시기심, 질투나 적대감을 가지고 저항하거나 공격하는 것보다 연구하고 모방하는 데 있다.


시각화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는" 학습 기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한 행동, 특성 및 태도를 시각화하고 시연해 보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도 "나는 할 수 없어"와 같은 저항이나 부정적 태도가 표면화될 수도 있다. 시각화와 시연이 다양한 영역에서 성과, 신념 및 진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Petras, 2006). 마음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드러나는 경향이 있으며 스포츠와 심지어 사업을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이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마음에 있는 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커진다. 그리하여 '고귀한 목적에 기여하는' 해답을 구하면 그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바람과 이득의 실현을 표명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있다.


위기와 재앙

앞서 기술했듯이 아주 큰 재앙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그들이 열심히 그리고 뜨겁게 기도했다고 보편적으로(99%) 밝히고 있다. 역설적으로 어떤 생존자들은 (특히 토네이도에서) 가장 최악의 위기 동안 아주 깊은 평화의 상태(지수 600)였다고 말했다. 아주 철저히 승복할 때 두려움은 사라진다.


포기함으로써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을 받아들인 결과는 그보다는 좀 덜하지만 같은 현상이다. 이러한 승복은 상상으로 '머리에 총을 대는' 기법으로도 배울 수 있는데 즉 "머리에 총을 대고 있다면 이러저러한 욕망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을 이용하는 방법은 우리가 '가상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의식을 일깨우며 따라서 진짜 문제는 '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에 있다는 깨우침을 준다. 이런 식으로 저항이란 의지로써 극복되는 것이다.


강압

앞선 예와 매우 비슷하게 강압과 극심한 위협도 실제로 전향을 가져올 수 있으며 회심자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수 세기 동안 사용되었다. 강압과 관련하여 기관에서 세뇌기법과 위협이나 교화책을 공인된 위협책으로 남용하는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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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30 17:06 실체,영성,현대인

종파주의와 종파

잠재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공식 종교, 교리 및 권위의 전반적 영향은 군목들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존경심에 반영되어 있는데 군목의 역할이 종파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보편적 선익이 있음을 의미한다. 군목은 세례식, 견진, 결혼 및 임종, 장례 및 발인 등에서의 직무뿐 아니라 군내 모든 분야에서 차별없이 봉직한다.


신앙의 길은 기초적 전통으로서 모든 종교와 영적 노선에 필요한 근거이자 기초(자연법)를 형성한다. 신앙은 매우 자주 성실한 가정생활과 문화적 전통의 아주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것은 익숙함에 의해서 동화되는데 그 익숙함에는 종교적 축일과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축일은 물론 이러한 예식에 정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포함된다. 또 공식 교회모임이나 단체에 속해서 종종 영감(커다란 고딕 성당과 우아한 회교사원 같은 데서 얻는 영감을 말하며 저런 성전은 신을 찬미하기 위한 것인메 그 의식 측정치는 모두 700대임)을 부르는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데서 오는 종교적 유익도 있다.


집단의 지향에서 나오는 영적 힘은 헌신, 예배 및 기도로써 강해지는데 저런 요소들은 책임감, 진실성, 정직성, 도덕 및 윤리를 뒷받침함으로써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의식 진화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전통적 미국'이라 불리었던 기초 원칙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전통적 미국이란 원칙 하에 오늘날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바이블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다. 이것은 특정 신앙을 상징하는 게 아니고 그 권위의 기원인 신의 말씀이라는 주권자의 권위를 받아들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앙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삼덕의 주춧돌이다. 신앙의 커다란 보상 중 하나는 무상한 것에 대한 기대를 넘어 영혼의 다음 생 안으로 확장해 들어간다는 점이다.


덕(지수 210~385)

영적 진화를 위해서는 진리에 관한 변증법을 지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긍정적 성격특성과 공정성, 선 및 품위에 대한 감각에 끌리는 정도는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 보이스카웃, 걸스카웃 및 형제적, 공적 봉사, 공제주의적이거나 인도주의적 기관 등처럼 진실한 조직과 더불어 부모의 모범, 사회적 확인과 강화 및 종교 등에 의해서 가장 잘 길러진다. 긍정적 성격특성이 성취 및 삶의 만족은 물론 높은 수준의 행복, 성공 및 건강과 관련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선업(카르마)에 의해서 인간은 성실한 가정, 문화 및 환경 속에 태어나고 거기에 동화됨으로써 본질적 자산과 성격특성을 습득한다.


집합적으로 이런 특성은 현대 문명과 전통적 미국의 근간이며 거기에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고 강력한 국가가 나오게 된 기반이기도 하다. 악성의 정권과 문화를 특징짓는 것은 이상과 같은 가치를 결여한 것인데 그것이 수세기에 걸쳐 인류에게 전쟁, 빈곤, 죽음과 파괴를 초래한 원인이다(예, 폴포트, 스탈린, 나찌, 공산주의, 파시즘, 이슬람 테러주의).

세계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200 이상의 것과 200 미만의 것) 간에 상호작용이 펼쳐지는 무대다. 각 사회마다 '물과 기름'의 입지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다시 진실성이 갈리는 임계점인 200의 위 아래인 개인들, 기관들이나 집단들이 나뉜다.


조사에 의하면 대략 92%의 사회문제는 200 미만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며 그로 인해 시민들에게 전가되는 전체 비용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방임적이거나 불성실함을 용인하는 사회는 삶의 질에서는 물론 삶의 모든 분야에서, 즉 일상의 육체적 안전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적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덕이란 오랜동안 그것으로부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경은 물론 긍정적인 자아 존중이 나오는 '기초적 품위'로 생각되었다. 모든 덕은 선의와 책임에 기초하는데 이 두 가지는 책무, 정직성 및 신뢰의 바탕이 된다. 이런 것들은 또 사람이 도움이 되고 진정성이 있으며 우정이 있고 의지할 만하다는 것을 뜻하는 성숙성의 표지이기도 하다.


윤리적 감각은 공정성, 이성적임 및 외교적 수완으로 귀결되는데 이런 것들은 타인의 느낌을 존중한다는 표지이기도 하다. '세상의 소금'이 되는 사람은 우정있고 예의바르며 신중하고 균형감이 있다. 나아가 그들은 일반적으로 우호적이고 남을 도우며 자기들의 부정적 감정을 남에게 퍼붓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지 않으며 성적이거나 다른 무엇으로 약탈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긍정적 특성을 '인격'이라 하며 참으로 그러한 것을 습득하는 데는 개인적 노력, 자기통제 및 인내가 필요하다. 또 이러한 특성은 애덕에 이르는 기초 자산이 되는데 애덕은 500으로 측정되며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우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무조건적 사랑(지수 540)이라는 위대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덕을 완성하도록 노력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목표는 인류의 0.4%만이 실제로 달성하고 있다.


근본원리와 윤리 및 도덕은 200 미만의 의식을 없애기 위한 수단과 동력도 제공하고 있다(의식수준을 넘어서 참조). 영적 진보의 각 단계마다 그 자체가 보상이 되며 그리하여 이 여정은 그 자체가 동력이 되고 점증적으로 기쁨을 주는 삶의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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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9 20:01 실체,영성,현대인

도입

신에게 이르는 길이 수천 가지 있다고 오랫동안 얘기되고 있다. 전통적인 길은 앞선 저술에서 기술했으며 거기에 주요한 인도 수행자와 위대한 스승들은 물론 세계의 위대한 종교에 대한 의식 측정치를 포함시켰다. 대략 기원전 1만년 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종교 및 영적 조직과 집단에 대한 측정치도 붙였다.


그 정보가 진리의 수준을 정의하고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노선에 대해서나 실용적인 가치를 가지는 검증된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구도자는 신뢰를 위해서 역사적이거나 외적인 변수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가 자명한 검증에 의한 것이어서 그 간편성, 편안함 및 확실성이 제고되었다. 의심이나 불확실성을 배제하고 확증과 상호대조가 가능한 축적된 정보의 총체에 전반적으로 부합하고 일치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의식 측정의 방법론과 그 발견은 의식 자체의 진화 산물인데 그 덕분에 진리와 그 확실성이 드러났다.


종교

영적 교육은 지적 이해, 신앙, 이성 및 논리에 기초하며 다른 연구 주제처럼 기초적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 점은 역사적으로 일정한 과정을 거쳐 신부, 목사 또는 신학박사 학위를 정식으로 받도록 하는 신학교 및 교계의 학문적 문서는 물론 종교에 의해서 제공되었다. 


그러한 연구가 신앙을 굳게 하고 복잡한 정보를 통달하게 하는 반면 그 자체로 반드시 개인적 주관적 깨달음이라는 진보한 상태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한계는 깨달음이라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기보다 학문적 세분화와 장벽치기와 박식함으로만 귀결되는 학계의 맥락화 과정 때문인 듯하다. 보통 철학, 신학, 존재론 및 형이상학의 엄청난 양과 복잡성을 생각할 때 그 분야를 통달하는 것은, 높은 학위를 가진 고위 성직자의 "교회 박사" (예 마이스터 에카르트) 같은 직함에서 보듯 매우 존경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위나 '많이 배운' 노선을 따르는 것에서 초래될 수 있는 한계는,

  1. 출판물 자이곤에 있는 논문에 따르면 지적 영역 내에서 세분하여 장벽 치기(신학은 440~470으로 측정됨). 
  2. '무엇무엇에 관하여' 아는 것이 '무엇무엇이 되는' 것과 동등한 것이라는 영적 에고와 환상에 이끌리게 됨. 예를 들면 애덕에 관하여 논문을 쓰는 것과 세상에서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무조건적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3. 직업, 전문직 또는 제도적 직위나 기능으로 맥락화함으로써 세분하여 장벽 치기. 종교적 직책은 근원적으로 다른 이들을 교육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적 혜택은 물론 커다란 이익이 있다. 
  4. 교계내 정치와 직책이나 권력에 대한 에고 차원의 이끌림에 사로잡힘(예 교황대리, 몬시뇰, 고위 성직, 주교, 대주교, 추기경 등). 영적 진화를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대성당의 장보다는 수위가 되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특정 교리와 그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서 역설적으로 편재하는 실체로서의 신보다 종교 자체에 대한 숭배로 이어질 수 있는 특정 교리에 편중된 충성도 생길 수 있다(예 '종교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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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9 08:18 실체,영성,현대인

무신론, 불가지론, 불신(2)

무신론이 의식 수준 190으로 측정되는 반면 200 수준의 불가지론은 좀더 고차원이고 실체에 부합하며, 지성이 그 자체로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불가지론에는 궁극의 진리에 대하여 반목하는 부정적 감정 태도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회의주의보다는 높게 측정된다. 그것은 지성이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그저 겸손하게 언급한다. 적대적 태도의 한계는 지성만의 수준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지성에게 구한다는 점이다.


불가지론과 무신론은 나이 먹는 것에도 일치할 수 있으며 지혜의 노선을 따라 감정이 성숙하는 것과 함께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이어서 내용물이라는 선형 차원뿐만 아니라 맥락이라는 비선형 영역에서도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데 비선형 맥락은 궁극의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인생의 많은 영역에서 선형적 지적 과정보다 계시의 메카니즘을 통해 드러나는 고차원의 인식 능력의 확장 및 확신이 사고를 대체한다.


의심과 불신은 종종 좌절, 재앙 혹은 단순한 성숙과 지혜의 출현으로 인해 삶을 재정비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의식의 커다란 도약의 전조가 된다. 이런 일은 기적적인 일을 비롯해 커다란 전환을 겪은 많은 사람들, 심지어 성인들이 주목했던 바다. 그러한 길 가운데 하나에는 재난적 환경으로 인해 초년의 종교적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이 포함되는데 그런 일은 확인가능한 진리에 대한 수년간의 추구에 이어지곤 한다. 그러한 내적 탐구는 관련된 종교 없이도 명상을 함으로써 가속된다. 그래서 불신자에게는 붓다께서 '신'에 대한 믿음 없이 8정도를 가르치셨기 때문에 불교가 종종 실용적이고 매력적이다. 


불신자에게 맞는 또 하나의 길은 양자 역학의 발견을 예견한 베다와 우파니샤드가 있다. 이들 경전은 정신 작용은 물론 지각에 의한 환상을 넘어 존재하는 원시의 근본 실체인 절대 원칙의 궁극 실체와 의식 자체의 무한한 장에 대하여 말했다. 아드바이타(비이원성)의 길은 모든 신앙체계를 배제한 근본 진리에 대한 성실한 구도의 순수한 노선이다. 필자의 이전 저작에서 이러한 것을 기술해 두었다. 비이원성이 깨달음에 이르게 함에도 베단타 연구는, 혼란스러운 신앙 체계가 될 수 있는 여러 인도 철학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회의주의자와 불신자에게 있어 의식 자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길은, 모든 신앙 체계를 넘어 오직 성실한 호기심과 진정성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길이자 방법론이다.

영적(종교적) 진리에 대한 마음의 (선형적) 모든 묘사는 실효성이 없으며 논쟁과 토론에 빠지기 일쑤다. 하지만 의식 자체(비선형)는 정의와 묘사를 뛰어넘으며 회의주의나 의심 또는 불신에 좌우되지 않는다.


의식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면 '의식의 빛'이 '깨달음'의 조건이기 때문에 바로 비추임의 근원에 다다른다. 그 빛에 의해서 대상과 주체는 '내재하는 신'인 참나의 깨달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 [제13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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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8 14:31 실체,영성,현대인

사회적 생존

대중성에 힘입은 불성실한 자들의 맹공은 의식 수준이 200 미만인 55%의 미국인이 뜻하는 바이고 그들의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미국 사람의 전체적 의식 수준은 현재 421(426이었다가 2006년 가을 떨어짐)이다. 이렇게 두드러진 격차를 보이는 이유는 200 미만 수준에는 성실한 사람들의 높은 의식에 존재하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 가운데 상대적으로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힘이 매우 강해서 사회의 전반적 생존 능력을 지탱하며 나아가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예를 들면 상위 100명이 미국에서 없어지면 전체 의식 수준은 320으로 떨어진다. 1,000명이 없어지면 그것은 421에서 220으로 떨어진다.)


영적 실체, 도덕성, 성실성 및 진실을 반박하면 문명은 바닥까지 고갈된다. 인류의 전체 의식 지수는 (2007년 11월에) 204인 반면 세계적으로 상위 1,000명을 빼면 그 수준은 겨우 198이 될 것이다.


덜 진보한 이들에 대한 자비심은 사회를 끝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을 부추기고 진화상 운이 조금 안 좋은 이들의 부족을 메꾸면서 도움을 준다. 그러니 자비심, 수용 및 관용은 (물론 거기에는 종말론적 이슬람 지상주의[현재 지수 60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측정됨] 같은 사회-정치-종교적 실체에 대한 인식도 포함되어 있음) 실제적으로 사회적 균형과 능률을 지탱해준다.


무신론, 불가지론, 불신(1)

진정한 지적 의심은 의사결정과 믿음을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고려한다는 점에서 성실한 것이다. 이성은 정보에 논리가 가해지면 마음의 처리를 통해서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지적 처리를 한다. 그로써 (성숙한 선형적 체험과 지혜의 출현에 뒤따르는) 이분법과 의문이 들어선다. 드디어는 지성만으로는 가설적으로 설정된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고 따라서 신앙이 진화의 모든 단계에 동시에 수반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앙은 마음의 상수이며 따라서 어디에 신앙을 둘 것인가 하는 것이 유일한 질문이 된다.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은 '올바른 것'을 따른다. 이때 '올바름'이란 지혜에 부합하는 것이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진지한 구도자는 겸손함으로써 마음이 받은 교육에도 불구하고 저 혼자서는 진실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진실 검증에는 객관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뿐 아니라 주관적 체험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필요함)는 것을 알게 된다.


영적 실체와 진실을 성의 있게 추구하는 대다수에게는 신앙을 통해 권위에 의지하는 것으로 족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의문에 잠긴다. 그러나 그 해답은, 오늘날 세상에서 의식 측정 방법으로 영적 실체를 검증하는 데 더하여 의식 수준을 초월할 때 이뤄지는 내면의 영적 진화를 주관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조합에 더하여 신에 이르는 길로서 진리에 헌신하면 드디어는 고전적으로 전해지는 커다란 '의심의 장벽' (그 반대편에 깨달음과 계시가 나타난다)을 넘을 수 있다. 모든 의심은 소아(小我)에게서 나오는데 우리가 확실성에서 오는 평화와 더불어 마침내 고향에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참나의 압도적인 실체 안에서 사라지게 된다.


마음이 어떤 전제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전제가 오류인 것은 아니다. 마음은 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은 무신론자가 빠지는 함정이다. 우리가 그 반대를 입증할 수 없다고 해서 바로 그것을 반증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은 자기가 전능하다고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철없이 가정하며 따라서 고차원의 진리에 도달하는 데 필수적인 겸손을 결하고 있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궁극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신론자가 의식 측정 기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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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8 08:08 실체,영성,현대인

진리에 대한 반박(2)

반항적 성격에게는, 진리나 권위가 전제적인 부모의 통제나 다름없기 때문에 불쾌하게 여겨진다. 손상된 인격은 온전한 진리를 위협적인 것으로 보며 따라서 그것을 거짓이라고 내친다. 


이러한 손상이 사회정치적 관점과 관련하여 낮은 차원이 된 예가 '나'('신경과민') 세대다. 이렇게 부조화한 인격은 자기애로 부푼 '권리'와 쾌락에 다투어 몰두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관점은 세속주의적이고 반종교적이며 신과 영적 실체에 반대하는 사회적 관점으로 요란하게 표현된다. 이들은 소위 '포스트모던'의 도덕적 상대주의(지수 160~190)인 철학 시스템 출현(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지원을 받는다. 이어서 에고의 떠벌림은 이러한 일단의 팽창된 에고 중심 관점을 '우수한' 또는 '선발된', '올바른' 것으로 명명함으로써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러한 추세가 학계의 대중주의적이고 사회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언론 자유'라는 것으로 포장되는 미사여구로 지원을 받아 실체 검증상 훼손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그러한 편중된 수사(修辭)가 학계로 침투함으로써 오늘날 130이나 심지어 90으로 측정되는 전체 강의에 대해 '관용'을 이유로 하거나 미화를 통해서 대학의 우수성은 크게 떨어졌다. 반권위주의 입장과 그 추종자의 모순은, 그 자체가 적대적이고 악의와 증오에 빠지기 쉬운 데다 초권위주의적이며 강압적인 전제주의라는 점이다. 그에 관련된 감정은 저차원 의식의 끌개장에 기인한 결과이자 그 끌개장의 본질이다. 그 정치적 부산물은 임계 의식 수준인 200 이상과 미만 사람들 간의 충성을 얻기 위한 치열한 투쟁으로 겪은 바 있다.


사회정치적 투쟁에 대한 주 표적은 도덕성 자체에 집중돼 있다. 그리하여 수천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야만적 범죄자를 위하거나, 이슬람 테러리스트(이들 역시 수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를 동정하거나 수천의 고문과 사망에 책임 있는 MS-13 갱단의 '권리'에 대한 옹호자와 후원자가 존재한다.


상대주의의 잘못된 미사여구에 의해 세뇌된 데 따른 실체 검증의 손상의 결과 다음과 같은 기괴한 일들이 생긴다. 즉 어린이를 살해한 소아성애자나 수천 명의 자국민을 죽이고 천정에 달린 줄에 매인 여성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며칠 동안 죽어가도록 함으로써 느린 성적 고문을  즐기는 정신병자 독재자에게 동정심을 표하기 위해 모여드는 연예인들의 사례 말이다.


권위라는 것은 꼭 그 반대 의견을 취할 필요 없이도 부동의(예, 반대)할 수 있는데, 억지로 부동의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류 수준으로 떨어지게 한다. 비유하자면 자비란 거짓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쪽에 가깝다. 왜냐하면 악을 옹호하는 것은 악에 동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미쳐버린 범죄자가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해서 거기에 꼭 동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적 실체를 분간하는 능력의 손상은 보통 사람의 순진함에 힘입은 미디어가 끝없이 선전하고 프로그램한 결과인데 보통 사람은 멋지고 유행하는 관점으로 위장된 오류의 왜곡과 과장을 통해서 쉽사리 끌리고 프로그램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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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7 03:34 실체,영성,현대인

진실 파악능력의 부재

진실을 알아볼 능력이 없는 이유는 (1) 정서적 장애, (2) 심리적 갈등, (3) 자기애가 지배적인 상태에서 성장이 멈춤, 또는 (4) 의식 진화의 수준이 낮은 것 등이다. 의식수준을 초월하여에 기술한 것처럼 마음의 기능은 저차원의 마음(지수 155)과 고차원의 마음(지수 275)에 해당하는 끌개 에너지 장의 지배를 받는다. 그 특징은 아래와 같다. (도표 발췌 - 역주, 저차원 마음; 축적 - 비난 - 형체, 사실 - 육체적, 정서적 생존 - 선형적 내용, 고차원 마음; 성장 - 책임 - 중요성, 의미 - 지적 발전 - 본질, 맥락)


저차원 마음이 미국인의 55%, 세계인의 약 85%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고차원과 저차원 마음이 지배하는 문화와 국민은 광범위하게 분포한('충돌하는') 세계관을 가리킨다. 그 격차는 IQ 수준에 반영되는 게 아니라 본질과 외양을 분간하는 능력 및 자기애적 자기중심성의 정도로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묘사하자면 저차원 마음은 평범하고 사실에 충실하며 세속적이고 정치색 있는 합리화와 표현법에 익숙하며 고차원의 마음은 분별적이며 추상적이고 원칙에 기반하며 훈련된 것이다. 저차원 마음은 부정적 감정, 특히 증오로 기우는 성향과 관련이 있다. 반면 고차원 마음은 보다 긍정적이고 온화하며 조화와 용서를 추구한다.


저차원 마음이 좌뇌, 즉 동물식 정보처리에 관련 있기 때문에 힘의 지배를 받기 쉽다는 점은 예후상 매우 의미심장하다. 고차원 마음은 높은 수준의 진실과 이성을 통하여 영향을 끼치려 한다. 반면 저차원 마음은 공격적이며 태생적으로 폭력에 빠지기 쉽지만 고차원 마음은 평화를 촉진하며 공격받을 때 마지못해 방어를 한다. 이러한 모습은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의 공격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동물 세계에 비견할 만하다. 오늘날 세계에서 육식동물은 핵폭탄으로 위협을 하며 초식동물은 방어적 미사일 경보 시스템이나 '공격'의 두려움으로 인한 '입바른 소리'에도 불구하고 소심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진리에 대한 반박(1)

영적 진화는 의식수준과 상관관계가 있고 이어서 에고에 대한 충실 대 진리에 대한 충실 간 균형을 보여주는데 진리에 대한 충실이란 바로 영적 실체의 반영이다. 의식수준이란 이어서 그에 부응하는 선택지의 범위를 포함하는 에너지 끌개장의 지배력을 반영한다. 이어서 400대 중반의 의식수준이 가지는 세계관은 170~195의 의식수준에게는 오류로 보이는데 후자의 수준은 매우 보편적일 뿐 아니라 바로 세계사에서의 사회정치적 갈등의 핵심이기도 하다.


가장 낮은 인간의식은 범죄자의 수준인데 이 수준은 동물적 본능, 즉 쾌락을 지연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며 체험에서 학습하는 능력이 없다. 이 결함은 옳고 그름을 태생적으로 또는 유전적으로 분간하지 못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러한 상태는 임상적으로 '행동 장애' 또는 '정신병적 인격장애(사이코패스 - 역주)'라고 하며 그 생물학적 바탕은 종종 뇌 회백질의 전두엽이 선천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과 관련된다. 이 조건은 세살 때 진단할 수 있으며 임상적으로는 일반적으로 난치 내지 불치로 본다.


그러한 예를 비행기 여행중에 필자가 보았는데 어떤 할머니가 한 어린이를 무릎에 앉히고 옆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할머니의 구슬 달린 목걸이를 붙들고 당기기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안돼'라며 아이를 때렸다. 애는 계속 야단을 맞았으나 똑같은 행동을 계속하기를 30분에 100번 이상 그랬다. 아이는 그만두거나 체험에서 배울 줄 몰랐다. 그렇게 부정적인 체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은 자기 국민을 대대적으로 파멸시키는 과대망상 독재자와 불량국가 지도자들이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통제가 안되는 고집과 반항은 유아의 에고가 가지는 전능감으로 인해 부모의 통제와 싸우는 '끔찍한 두살' 동안 보이는 특징이다. 부모는 제대로 반응할 힘이나 의지가 없을 수 있어서 아이는 충동 억제를 배우지 못하여 결국 옳고 그름이라는 기초적 생존 학습을 못한다. 이것은 범죄자들이 보여주는 매우 낮은 의식수준(특히 90)에 부응한다. 여기에다 입심이 더해지면 정치 용어로는 '악성의 메시아적 자기애' (과대망상증)라고 하는데 모든 독재자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자애로운 마음이나 선의가 없어서 증오를 기초로 권좌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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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6 10:57 실체,영성,현대인

회의주의자

널리 퍼진 태도인 회의주의는 정서적이거나 인격적 장애의 결과일지 모르는 반면(예, 프로이드의 '항문기 반항' 또는 부모 권위에 대한 '저항적' 인격) 그것은 오늘날 과학에서 주관적 체험과 '일인칭' 증언의 진실성에 관해 취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토론과 오랜 대화로 진화하는 지적 태도에 반한 것이기도 한다(Bauer, 2006). 이러한 갈등은 그저 패러다임 한계의 결과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펜실바니아 주립대의 찰스 아이젠슈타인 교수는 회의주의에 대한 한가지 조사를 했는데("신념의 상태는 존재 상태다.") '실험자 효과'가 주류 과학에서 신뢰의 문제를 낳는다고 한다(그에 대해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이미 큰 영향을 끼친 바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지적으로 이성적인 회의주의로 생각되는 수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숨겨지고 악의적이며 '비열한 정신적' 태도와 세계관(이것들은 전문적 '폭로자'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주 "냉소적이고 분노에 차며 독단적이고 잘난체하며 감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을 가진 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들은 강의와 책(그 모두가 아인슈타인이 "가짜"이며 "사기꾼"이며 "벌거벗은 황제"로 묘사하는 것들임)을 통해서 아인슈타인을 반박하느라 수년간을 보낸 전문적인 회의주의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부정적 평판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들은 굽히지 않고 심한 비난을 지속하는데(지수 190) 원자력 개발로 아인슈타인이 맞다는 게 확인된 사실도 염두에 두지 않는 게 분명하다.


정신치료에서 이러한 것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 환각 증세" (Muller, 2006)라고 하는데 "유태인 학살은 없었다."든지 "미국 정부가 9/11을 일으켰다."든지 하는 믿음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 장애자는 자신의 세계관은 진짜고 세상이 속이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이러한 증세는 착오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은 뇌 기능 장애와 유아기 자기애적 전능감이 줄어들지 않은 것과 시기하는 권위 있는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 함께 작용한 데 기인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회의주의(skeptikos)란 말은 (피로의 제자들이 말한 대로) 진실은 알 수 없고 지식에 대한 확신은 불가능하다는 철학을 가리킨다. 데카르트가 지적한 대로 인간 마음은 외부 도움이 없으면 레스 코기탄스 인테르나(지각이나 의견처럼 사물이 인간 마음에 어떻게 드러나는가)와 레스 엑스테르나(본질, 근원적 실체)를 구분하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선(善)만을 구하지만 가공의 선(외양)과 본질('진짜' 선)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하여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천적으로 볼 때 합리적 회의주의가 거짓 주장과 어리석음을 밝힌 공이 있지만 회의주의 자체는 종종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키티호크에서 있었던 라이트 형제의 비행에서부터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날 양자이론을 포함한 의학과 물리학 같은 과학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발견이 있을 때마다 있었던 공공연한 비난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회의주의자가 신성 자체뿐 아니라 맥락이라는 전체적인 비선형 영적 패러다임을 부인하는 것은 (통과의례와 같은) 전통적인 일이다.


만일 회의주의가 믿는 것처럼 참으로 진리를 알 수 없다면 그들의 전제와 주장도 오류라는 게 자명하다. 그러니 회의주의는 자승자박의 논리라 할 수 있다.


회의주의의 진실성 수준이 왜 그렇게 낮게(지수 160) 나오는지 하는 것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허무주의(지수 120)의 변종이기 때문이다. 회의주의는 근본적으로 맥락의 실체, 특히 500대, 600대 및 그 이상을 논하거나 조사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이 공언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또 회의주의는 내용만을 다루며 의미 자체의 중요성이 완전히 맥락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음에 맥락은 하이젠베르크가 보여준 지향의 표현을 반영하기 때문에 관찰자의 의식 수준에서 나오는 힘과 일치한다.


순진성이나 회의심과 대조적으로 의식 조사법은 무언가를 입증하거나 반증하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감을 우회하기 때문에 과거에 진술이나 논증이나 추론으로 알 수 없었던 의식 수준을 분별하거나 확인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회의주의는 선형적 정신 영역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즉 회의주의는 정신적인 것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본다. 비선형 기법에 의해서 맥락의 깊은 영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비선형 기법을 이용하면 회의주의자의 목적은 분명히 더 잘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뉴턴 물리학이나 미분을 써서 양자역학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는 없는 것이다. 회의주의는 실체에 관한 보다 넓은 패러다임에 접근할 수 있는 지식의 증가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훨씬 더 고차원 지식에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회의주의에서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부정의 부정이 곧 긍정은 아니라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이는 유명한 고전인 모순 상자 얘기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즉 상자를 하나 만들어 그 안에 "이 상자 안의 모든 진술은 거짓이다."라는 말을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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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5 09:53 실체,영성,현대인

도입

에고(마음)는 애석하게도 과오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한 약점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에고는 회의주의나 의심이라는 방어수단을 사용한다. 신뢰에 대한 성향도 초년에 부모-자식 관계가 어땠는지 반영한다. 냉엄함이나 방치가 삶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가져오는 반면 사랑은 신뢰와 신앙에 도움이 된다. 철없이 빠져드는 것에서부터 적대적으로 거부하기, 인습을 벗어나기 및 심지어 여성 혐오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믿을 만한가에 따라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하나의 유형이 출현한다.


실체에 관한 실용적 감각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도움이 되는 추정과 가능성에 기초하여 처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극단은 회피한다. 체험을 통하여 세련되고 성숙한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잠정적이거나 임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증거나 체험을 통해 더 확인되기를 기다린다.


이러한 실체 검증 과정에 본질적인 것은, 형태와 그 심적 영상 및 개념으로 된 선형 세계에 대한 감각과 심적 처리에 의존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해력의 범위는 뇌 생리의 영향을 받는데 이미 기술했듯이 뇌 생리는 의식 수준 자체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동물적 본능이 지배하는 좌뇌형 처리는 진화의 한계상 영적 차원을 포함한 비선형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본능과 관련한 대뇌변연계는 120으로 측정됨). 좌뇌는 선형적 내용물을 추구하며 우뇌는 의미와 이해(비선형 맥락)를 추구한다.


카르마상(생물학상) 우호적인 유산 덕에 그 능력은 신뢰를 향하여 발달한다. 즉 비선형적 영적 맥락과 이해수준을 주관적 확인 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어서 정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지켜나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급 양자물리학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전문가의 권위는 평가하고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현명한 자는 최소한 지성적으로나 실용적으로나 더 현명한 사람을 신뢰하며 그 덕에 그의 삶은 향상되고 혜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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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7.03.24 20:16 실체,영성,현대인

패러다임 차이

실체에 대한 인간의 감각은 의식 수준의 지배적 상태와 일치한다. 어려운 비유를 쓰자면 서양 세계와 유대-그리스도교 문화는 가슴 차크라(사랑, 용서, 관용, 친절 및 약자와 무고한자 및 힘없는 자의 보호)에 일치한다.


대조적으로 샤리아 법은 태양신경총(공격적), 비장(폭력, 증오, 살인) 및 회음 차크라(천상의 성[性])에 모여 있다. 이 둘은 양립할 수 있는 세계관들이 아니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산상수훈과 바로 반대편에 위치한다(린드버그의 예수의 정치적 가르침 참조). 신(알라)이 오직 아랍 세계의 기도만 듣는다는 이슬람 가르침도 주목할 만하다.


코란이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로 인정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거부하며 그 대신 노예적 엄격성, 무고한 자의 살해 및 용서 없는 불관용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일치한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이나 실체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유화적인 것을 천박한 약점으로 여긴다. 즉 그것은 그저 공격만을 부르는 약점이자 경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코란에서 문구를 고르면 모든 형태의 폭력과 극단론을 합리화할 수 있게 된다.


서양 사회의 제약인 이성

행동이란 것이 알아낼 수 있고 그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논리적, 합리적 동기에 기반해야 한다고 서양 세계는 전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극단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요 요인이다. 그리하여 극단적인 행동을 설명할 수 있도록 무슨 '목적'이 전제돼야 한다(예 목적론적 추론). 실상은 '선'이나 '목적'이란 게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증오가 언제나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살인극은 본질적으로 그 자체 만족을 추구하고 누리는 것이다. 그저 그 본성 요구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살인자는 그저 죽이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동기'나 합리성이 존재할 리 없다.


이상과 같은 것은 2001년 아프카니스탄에서 거대 불상을 파괴한 이슬람 탈리반에게서 볼 수 있다. 그 불상은 약 450미터, 150년 된 세계적인 보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한 자기애적 파괴에 대한 반대와 유감을 표명한 국제연합 사무총장은 그것이 인류에 대한 손실임을 표했다. 또한 나아가 그러한 파괴는 이슬람에게 수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서양에서 그것을 용호하는 이들은 그토록 폭력적인 문화에서 그것을 덮을만한 무언가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제1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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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